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55] 작명의 즐거움

*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2025-02-28     영주시민신문

                  작명의 즐거움

                                                     -이정록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

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 

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싸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

아난열정 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

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

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

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펄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 

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 

놓고

  머릿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간절의 틈새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시 한 편이 입꼬리에 웃음을 물게 합니다. 소재뿐만 아니라, 발췌한 이름 하나하나도 기발하면서 재미있어요.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다는 구절이 먼저 숨을 쉬어요. 심사위원들 의견으로 애필(愛必)이 뽑혔겠지만, 취향에 따라 본문에 적힌 낱말 중에 더 공감이 가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시인이 생각해 낸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보다 더 좋은 이름을 생각해 낼 수도 있을 테고요. 생각들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니까요.

‘물려줄 재산도 없지만 물려줄 사람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공감을 얻는 시대입니다.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관한 시를 즐겁게 읽었지만요. 크게 한 번 웃어버리기엔 아쉬운 뒷맛과 씁쓸함이 남아요. 현실적 문제인 벼랑 같은 출산율 때문이겠지요. 골목골목을 꽉꽉 채웠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미래처럼 숨죽이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