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54] 여긴 이별이 와글대요

김경미(시인)

2025-02-20     영주시민신문

   여긴 이별이 와글대요

                                           -홍외숙

 

기대고 싶은 것들 전봇대 아래 모였다

이 빠진 그릇이며

다리 빠진 의자며

쓸모에 목숨 바친 뒤 여기 죄다 나앉았다

 

한철 영화 무색하게 주눅이 폭삭 들어

내일 없는 얼굴들 통성명 필요할까

묶인 몸 달그락거리니

길짐승들 킁킁댄다

 

찌그러진 몸 위로 햇살들 놀다 가고

휘청대던 취객이 피로를 내던지는

이별이 왁자한 이곳에

배경이 시들고 있다

 

-수용의 방식

쓸모를 다하고 내몰린 것들이, 혹은 내몰림을 택한 것들이 모두 모여 있어요. “한철 영화 무색”한 공통점을 안고요. 홀로 떨어져 뒹구는 것보다 적당히 결집해 남은 시간을 다잡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한 생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똑같네요. 그들은 전봇대 아래에서, 우리네는 요양원에서…

어찌 보면 쓸쓸할 수도 있는 장면이 한 시인의 눈길을 잡아당겼나 봐요. 건성으로 보지 않고 물건 하나하나마다 의인화시켜 생생하게 살려냈어요. 나는 진정 사람일까요? 아니면 “이 빠진 그릇”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다리 빠진 의자”일까요? 쉽게 읽히지만, 철학적 사색이 숨어 있는 시조입니다.

그렇게 추위도 와글대네요. 계절의 시간이 들떠 있을 때, 도망을 준비하던 겨울바람도 한 번쯤 휙 스쳤을까요? 동요하던 겨울이 자리를 내주는 대신, 여린 봄 햇살이 머리를 들이밀고 있어요. 뭐든 마음을 다하면 마음대로 빚어지는 순간도 오겠지요. 계절의 순리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