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52] 칠포에서
김경미(시인)
칠포에서
-유인상
사람들은 파도가 밀려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파도는 떠나고 있었다
여기서 땅은 끝났으나 바다는 여기서 비롯되었기에
끝을 알 수 없는 파도는 끝없이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여기는 바다의 종점이 아니라 바다의 시점인 것이다
안 그렇고서야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할 리가 없잖은가
불빛도 없는 어느 날 밤에
찬바람 부는 어느 날 겨울밤에
비마저 내리는 그 어느 날 을씨년스러운 밤에
고향마저 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찾아올 리가 없잖은가
와서, 속이 다 비도록 쏟은 울음을 파도 앞에다 묻어두고 갈 리가 없잖은가
-되돌릴 방도
종점과 시점, 즉 처음과 끝의 기준점은 어디일까요?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작이고, 시작이라는 신발 끈 꽉 조이는데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잖아요. 바다도 그렇다네요. “파도가 밀려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파도는 떠나고 있었”고, “땅은 끝났으나 바다는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발상이 참신합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속사정을 어찌 알까요? 그러나 성마른 삶을 되돌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끔 읽어 낼 고요 하나 심어둔 마음만 있다면요.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무심코 마시는 물 한잔이든요.
바다도 그런가 봅니다. 마음 살살 구슬리는 파도와 눈싸움 하다 보면 거품 팽팽 터트리며 보내오는 바다의 신호가 보입니다. 끌어안지도 밀쳐내지도 않는 파랑(波浪)이 거기 있을 뿐인데 “속이 다 비도록 쏟은 울음을” 묻어둘 시점이 됩니다. 한때 걸려 넘어졌던 돌부리도, 에움길 더러 만나도 되돌릴 수 있다는… 그래서 바다가 부르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는 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