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47] 화이트 크리스마스
김경미 시인
화이트 크리스마스
-나태주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엄마도 산타가 필요해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산타 할아버지는 잘 다녀갔나요? 아니, 산타 할아버지 역할 수행은 잘 했나요? 라고 묻는 게 더 맞겠지요. 산타의 정체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아이들 눈동자가 별이 되었을 크리스마스. 그 복작이던 설렘을 풀고 또다시 내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게 되었어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하는 풍경 사이로 마시다 남은 소주를 홀짝이거나, 혼자 꾸린 식사에 기대어 울며 긴 하루를 견딘 누군가도 많았겠지요.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는 남편을 둔 아내는 얼마나 든든할까요?
어쩌다 성탄 전야에(혹은 후에라도) 이 시를 만나 읽게 된다면, 우리도 온 세상이 축복하는 듯한 위로를 받게 되지 않을까요? ‘자네, 나랑 크리스마스 함께 보내보지 않을래?’하고 반짝이는 제안을 하는 것 같잖아요.
‘산타 할아버지는 왜 엄마한테는 선물을 안 줘?’ 오래전, 선물을 품에 안은 아이가 함박웃음으로 던졌던 질문이 뱅뱅 돕니다. 왜일까요? ‘엄마도 선물을 받고는 싶은데 너만큼 착하지 않아서 그럴까?’ 내년엔 나이를 조금 더 늘인 크리스마스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