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39] 일몰
김경미(시인)
2024-11-01 영주시민신문
일몰
-박영희
종아리를 걷으라 한다
혹시 너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누를 범한 일은 없었나,
그 잘못들 죄가 돼버린 건 아닌가 하여
불혹의 종아리 걷어 올렸더니
차알싹!
차알싹!
수평선이 핏빛이다
-유혹의 순간
공자는 마흔을 불혹이라 했습니다.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유혹과 번잡함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굳건히 지키는 마음을 의미입니다. 그 적정한 나이를 마흔으로 세운 것 같고요. 그러나 이 개념은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돼야 할 것 같습니다. 수명도 길어지고, 다양한 삶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마흔이란 나이는 오히려 유혹의 나이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보셔요! 여기 또 하나의 유혹의 순간이 펼쳐져 있어요. 저녁 무렵, 문득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섬세한 빛에 빠져 아뜩해지는 경험은 누구라도 있을 겁니다. 번지는 일몰에 포위당하는 순간, 유혹이란 늪에 푹 빠져버립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나만 먹는 것처럼요.
박영희 시인이 너른 바다 앞에서 그랬듯이, 우리는 부석사 배흘림기둥에라도 서서 “차알싹!/ 차알싹!” 감성의 종아리를 걷어 보는 건 어떨까요? 해 꼬리 남아 있는 하늘, 상갓집 같은 하늘을 보며 마음의 종아리를 맞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걷어 놓았던 “핏빛” 종아리를 조용히 쓰다듬어보는 건 또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