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37] 호숫물

김경미(시인)

2024-10-17     영주시민신문

      호숫물

                      -성명진

 

뒤에 처지는 이 없이

혼자 먼저 가는 이 없이

 

뽐내어 솟아나는 이 없이

넘어져 밟히는 이 없이

 

밝고 따스하게

우리는 모여서……

 

-무엇이 되지 않아도

‘혼자 빨리 일어나고, 혼자 빨리 공부해서, 혼자 빨리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후 그 기쁜 소식 빨리 알리려고 하니 들어 줄 친구 하나 없었다’는 동시를 읽은 적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밥벌이의 장이나 잘남을 가졌다고 한들, 이런 형편이라면 살맛이 날까요?

‘나만 좋으면 돼’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들불처럼 번지는 세상입니다. 뻔뻔함이 미덕이 되는 사회. 사회화가 덜 된 사람 봐 주다가 오히려 그런 사람들 기만 살리는 사회. 다른 사람의 곤란이 내 일이 아니라서 안도하는 사회. 이처럼 그와 나를 구분 지으며, 잘못됨을 인지하고도 외면하며 살아가는 비겁한 오늘날입니다.

이젠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볼 시간입니다. 어떤 모습의 나이든 간에, 규정된 ‘나’를 제일 먼저 빼 보세요. 그러면 그 자리에 “밝고 따스한 우리”가 완성될 테니까요.

산 있고, 하늘 있고, 느린 말이 있어서일까요. “뒤에 처지는, 혼자 먼저 가는, 뽐내어 솟아나는, 넘어져 밟히는” 아웅다웅이 이 동시엔 없습니다. 두터워진 호숫물만 거울처럼 반짝입니다. 때때로 바라보며 마음의 탄력을 얻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