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35] 산책
김경미(시인)
산책
-임승유
돌아와서 보니
사람이 있다. 어디서 본 사람이다. 사람은 살아 있고
움직이다가 안 움직이기도 하니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 한 잔 드려요? 물어본다. 꺾어 온 장미를 화병에 꽂
으며 아까 소리 들었죠. 문이 꽝 하고 닫혀서 깜짝 놀랐
잖아요. 뒤돌아보면 사람이 있고
바람이 불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의자에 앉는다. 오늘 같
은 날은 다시 안 오겠지. 오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창틀의 높이를 생각하면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걷다 보면
당신이 지나갑니다. 한 발짝 뛸 때마다 씨알 굵은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당신이 지나갑니다. 그렇게 당신보다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당신은 또 저만치로 멀어져 가고요. 당신은 놓치고 말았지만, 산책은 놓치지 않겠다 다짐하며 걷습니다. 그래야 또 당신을 만날 수 있거든요.
“물 한 잔 드려요?” 물어 오는 바람이, 달콤한 땀이, 낮은 담들의 작은 움직임이 당신인 듯하여 깜짝 놀라는 발걸음에 햇빛이 듭니다. 내 안에 움츠리고 있던 또 다른 내가 한 뼘씩 용기를 내며 따듯해집니다. 산책이나 하자고 응하던 당신을 따라나서길 잘 한 것 같습니다.
산책보다 사람이 더 주목되는 이 시는, 당신을 불러내는 시간에 들게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면서, 저마다 다른 “창틀의 높이를” 쓰다듬어 보게 합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이 됩니다. 정작 중요한 건 사람이니까요.
오늘 같은 날은 또 언제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