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31] 이빨論
김경미(시인)
이빨論
- 류근
놈들이 도열해 있을 땐
도무지 존재감이란 게 없는 것이다
먹잇감 떼로 모여 작살내고
한 욕조의 거품으로 목욕하고
처음부터 한 놈 한 놈은 뵈지도 않는 것이다
일사분란하게
꼭 이열횡대로 도열해 있어야 폼이 나는 놈들
그러다 한 놈 탈영하고 나면 그 자리 너무나 거대해져서
비로소 한 놈 한 놈 공손하게
출석을 부르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다 한 놈이 아프면 된통 아파서
뼈다귀만 있는 놈들이니 뼈가 갈리도록 아파서
함부로 만만히 봤던 놈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도 달도 당신도 갯벌도
두루미도 학꽁치도 강도 태양도 마찬가지
전부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서
한 놈 한 놈 뵈지 않을 때가 좋은 때다
하느님이 공손하게
한 놈 한 놈 출석 부르지 않을 때가
진짜 좋은 때다
-옳거니, 거기 그 자리에 네가 있었지!
누구에게나 술술 읽히는 친근한 표현으로, 독자에게 교훈을 주는 시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시는 도덕이 아니기에 폼을 잡고 노골적으로 가르치려고 쓴 시는 독자는 물론, 시인들도 싫어합니다. 그런데 그런 느낌 1도 없이 깨달음을 주는 시가 간혹 보이면 전율합니다. 시를 “함부로 만만히 봤던 놈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이 시처럼요.
위아래 서른 개 정도 모여 있을 땐 몰랐던 결핍이 하나만 빠져도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으며 아픔, 아픔 그런 아픔이 없습니다. 바로 치통의 실체입니다. “먹잇감 떼로 모여 작살내고/ 한 욕조의 거품으로 목욕하고/ 처음부터 한 놈 한 놈은 뵈지도 않는 것”들 중 하나만 빠지면, “그 자리 너무나 거대해져서/ 비로소 한 놈 한 놈 공손하게/ 출석을 부르게 만”들며 뒤늦게 건강했던 치아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마음이 찰떡같이 통했던 사람들도 있을 땐 몰랐는데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허전함에 몸서리친 기억이 몇 번쯤은 있겠지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소중한 것들을 익숙해질 만할 때 놓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