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14] 첩첩
김경미(시인)
2024-04-26 영주시민신문
첩첩
-김수환
밤을 새워 만드는 사과파이에 첩첩이 있지
수십 장 종이 같은 마음을 아주 얇게
저미고 밀어 만드는 말 못 할 첩첩이 있지
물 마른 진흙 첩첩 비늘도 없는 미꾸라지들이
가쁘게 서로의 몸을 휘감는 첩첩이 있고
그래도 건널 수 없는 첩첩 마음이 거기 있지
첩첩 모퉁이 돌아 첩첩의 고개가 있고
오가는 걸음 첩첩, 얼싸안는 가슴이 첩첩
우리가 함께 못하는 그 평생도 첩첩이지
-착착
첩첩이 시간을 먹고 착착이 되었습니다. “말 못 할 첩첩”, “건널 수 없는 첩첩”, “얼싸안는 첩첩”이 견디는 동안 쌓인 것들은 얼마나 될까요. 듣는 귀 착착, 빼고 거를 수 있는 용기 착착, 스며드는 착착 정도는 쌓이지 않았을까요?
천양희 시인의 시 「생각이 달라졌다」에도 나오잖아요. ‘어둠을 지불해야 빛을 쐴 수 있고, 울음을 지불해야 웃음이 터질 수 있다’고요. 첩첩 같은 씨만 뿌렸는데도, 착착 같은 열매를 딴 듯한 기분이 들게 해요, 이 시조는요.
살아온 길에 미련을 두고, 그때로 돌아간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내지는 못할 것 같기도 해요. 태생부터 불완전한 존재가 사람이잖아요.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서성거리고, 여전히 맞서 봐도 “첩첩 모퉁이 돌아 첩첩의 고개가 있”을 게 뻔하거든요.
그래도 “우리가 함께 못하는 그 평생도 첩첩이지”라는 화자의 순응에 잠시, 아득해집니다. 먼 미래에 울어야 할 애틋한 몌별(袂別)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