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13] 거짓말

김경미(시인)

2024-04-19     영주시민신문

        거짓말

                                 -이은실

 

할머니는 집 밖으로 나오면

바보가 된다

핸드폰으로 길 찾는 법도 모르고

무인판매기 앞에선

항상 사람을 부른다

 

암만 해봐도 모르겠다며

깔깔 웃는 할머니

 

살기 참 편해졌네

세상 참 좋아졌네

 

거짓말!

하나도 안 편하면서

하나도 안 좋으면서

 

-서투른 강점(强點)

‘비루빡(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지도 않았는데, 비루빡이 밥해 주는 것까지 보네! 이 무신 일이고?’ 전기밥솥이 처음 나왔을 때 할머니가 했던 말입니다. 보리 찧기부터 평생을 두 손, 두 발로만 먹거리를 장만했던 할머니는, 정작 그 좋다는 밥솥 한 번 사용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요.

이 동시를 읽으니 그때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맛집으로 소문 난 식당도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한다면 가기 망설여지고, 핸드폰 터치 몇 번이면 무엇이든 주문할 수 있는데 그게 두려워 몸소 사러 가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요. 그때의 할머니가 지금의 내 모습이네요.

“살기 참 편해졌네/ 세상 참 좋아졌네” 맞습니다. “하나도 안 편하면서/ 하나도 안 좋으면서” 이것도 맞습니다. 경험과 관점 차이일 뿐이니까요. 이 편한 세상에 살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젊은 날의 정신력과 의지로는 “암만 해봐도 모르겠”는 할머니의 웃음이 서러워집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처럼, 할머니 코도 진작 하늘을 뚫었을 것 같은데요. 여전히 그대로인 걸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