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12] 의지
김경미(시인)
2024-04-12 영주시민신문
의지
-김정수
시내에 나간 아내가
무료로 나눠준다며
무궁화 묘목 열 그루를 들고 왔다
벗겨지지 않도록
새끼줄로 얼기설기 동여맨
흙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낯선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는데
어린데도
용케
울지 않고 잘 따라왔다
혼자라면 오다가 버려졌거나
누군가에게 건네졌거나
말라 죽었을지도 모른다
삽을 챙겨
아이들과 뒷산에 올라
외롭지 않은 간격으로 심고는
발로 꾹꾹 눌러 주었다
간밤에 비 내리는 소리 들려왔다
-심지어 무궁화잖아요
며칠 전까지 온 나라는 벚꽃 축제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모처럼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이 화려한 호강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식목일도, 한식도 지나갔고요.
“어린데도/ 용케/ 울지 않고 잘 따라”와 준, “무궁화 묘목 열 그루를” 심은 화자에게서 느껴지는 비장함은 무엇 때문일까요? 단지 “무료로 나눠준” 것을 “외롭지 않은 간격으로 심고는/ 발로 꾹꾹 눌러 주었”을 뿐인데요. 그렇습니다. 그 묘목이 바로 우리나라 꽃 무궁화이기 때입니다.
어떤 꽃보다 귀하게 여겨야 할 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국민의 대접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철 따라 다양한 꽃 축제가 열려도, 정작 나라 꽃인 무궁화 축제에 대한 소식은 간간한 것만 봐도요. 그럴 때마다 무궁화는 의연히 견디고 있겠지만, 높은 확률로 외롭기도 하겠지요.
이심전심일까요? “비 내리는 소리”조차 어린 무궁화의 무탈한 성장을 바라는 듯 밤새도록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