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07] 민들레꽃

김경미 시인

2024-03-07     영주시민신문

               민들레꽃

                                           -이은봉

 

농협 창고 뒤편 후미진 고샅, 웬 낯빛 뽀얀 계집애 쪼그리고 앉아 오줌 누고 있다

이 계집애, 더러는 샛노랗게 웃기도 한다 연초록 치맛자락 펼쳐 아랫도리 살짝 가린 채

왼편 둔덕 위에서는 살구꽃 꽃진 자리, 열매들 파랗게 크고 있다

눈 내리뜨면 낮은 둔덕 아래, 계집애의 엄니를 닮은 깨어진 사금파리 하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고.

 

-그러니 마음껏 피어도 좋다

다중인격을 가진 것 같은 3월입니다. 눈으로 푹푹 주저앉았다가, 살얼음 낀 바람으로 앙앙하였다가, 살방살방 햇살 줄기를 부려 놓기도 합니다. 그 변덕이 부끄러워질 즈음, 봄은 소명을 펼치기라도 하려는 듯 사방은 봄꽃으로 환해집니다.

짧은 봄바람만큼은 놓치기 싫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문득 하늘 한쪽이 따뜻해 눈 가늘게 뜨고 앉아 있다 보면, “낯빛 뽀얀 계집애 쪼그리고 앉아 오줌 누고” 있습니다. “연초록 치맛자락 펼쳐 아랫도리 살짝 가린 채”로 “더러는 샛노랗게 웃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와, 어느 누가 민들레꽃을 이토록 똑떨어지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봄을 알려야겠다는 민들레꽃의 본능적인 염원과 그 마음 아는 한 시인의 애정 어린 눈길 덕분 아닐까요?

민들레꽃은 홀씨가 닿은 곳이면 어디에나 피는 흔한 봄꽃이잖아요. 그런데 이 시를 통해 “반짝반짝 빛나”는 귀한 보석인 양 보배로워집니다. 그러니 봄 햇살 먹은 봄꽃이든, 그 봄꽃 담은 시(詩)든 마음껏 피어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