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106] 어머니의 손톱깎이
김경미 시인
어머니의 손톱깎이
-서숙희
손톱깎이라는 도구를 평생 써본 적이 없다
그 한 몸 그 한평생
논일 밭일 들일 산일
칠남매 자식들까지 모두가 손톱깎이였다
뒤틀리고 주저앉은 아흔 살 손톱을
잘 드는 금속성으로 깎아드려 보려는데
돌처럼 굳은 손톱에
튕겨나간 쓰리세븐*
*손톱깎이 제품명
-비애를 먹는 시간
얼굴보다 손을 통해, 손 한 번 쓰다듬어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속사정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얼굴은 거짓말을 해도 손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뜻이겠지요. 손이 들려줄 이야기는 넘치고도 넘칩니다. 그런데 왜 손일까요? 왜 다 닳아 버린 손톱일까요?
손톱깎이 한 번 써 본 적 없이, 손톱이 닳도록 구부린 “그 한 몸 그 한평생/ 논일 밭일 들일 산일”로 구순을 살아낸 어머니. 그것만이, “칠남매 자식들” 입에 밥숟가락 넣어주는 최선의 행위였을 겁니다. 끌어안고 사랑하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겨울 골짜기 어느 언 땅에 “돌처럼 굳은” 칡을 캐내어 꼭꼭 씹어보면요, 꽁꽁 뭉쳐 있던 쓴맛이 조금씩 단맛을 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맛의 율이 다듬어지는 슬픔의 광채 같은 순간이지요.
평생 다듬어보지 못했을 어머니의 손톱. 그것도 모르고 “잘 드는 금속성으로” 깎아드리겠다고 달려들다가 내 심장만 싹둑 잘려 버리는 아뜩함처럼요. 어머니의 깨끗한 손톱 조각들은 미래의 상상 속에서만 줍게 되는 것처럼요.
당신의 어머니는, 혹은 어머니의 손톱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