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101] 표절

김경미 시인

2024-01-18     영주시민신문

      표절

                                            -황유원

 

꿈에 누가 내 시를

표절한 시를 보았다

개소리라는 거 알지만

세 편 모두 그랬다

그는 내 시의 문장들을 교묘하게 줄이거나

변형시켜 놓았는데

일차적인 감정은 분노와 억울함이었으며

이차적인 감정은 어떤 문장은 차라리 내 것보다 신선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용서하기로 했다

 

어느 파리 날리는 옛 시골 다방

거기 그의 시가 액자 속에 담겨 있을 것만 같다

누가 그에게서

나를 읽고 갈 것만 같다

그가 나를 표절했다

라고 하지 않고

누가 와서 그에게서

나를 읽고 갔다

라고 하니 내가

늘어나는구나

내가 퍼지는구나

향기처럼

 

이래도 되는 걸까

내가 저기도

여기도

있게 되는구나

 

-시 아닌 시

“꿈에 누가 내 시를” 대신에 ‘꿈에 누가 내 돈을’, ‘꿈에 누가 내 얼굴을’, 혹은 ‘작년에 누가 내 사탕을’ ‘미래의 누가 내 시간을’처럼 원문에다가 단어만 살짝 바꿔보는 놀이를 해 본 적이 있나요? 짧은 시에다 다른 단어를 넣어 나만의 작품으로 완성해 보는… 그땐 상상력과 재미가 넘치는 단어로 잘도 채웠을 텐데요. 그게 창작의 처음이었을까요? 아니면, 표절의 시작이 되었을까요?

어디서 본 듯 아닌 듯한 글들이 난무하고, 엇비슷한 얼굴들이 거리를 채웁니다. 모방과 창조 사이로, 민낯과 성형 사이로 슬픔은 떨어지고 자신감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저기도/ 여기도/ 있게 되는” 냉랭함은 어쩔 수 없겠지요. 나도 있고 너도 있는, 역으로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세상이 허망합니다.

수작(예술이든 얼굴이든)을 위한 길에 대 놓고 베끼는 것은 하수구에 달라붙은 진흙처럼 고약합니다. 시 다운 시를 추구한다면서 교활한 영혼에 지배당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