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97] 자판기 앞에서 콜라의 기분을 생각했어

김경미 시인

2023-12-21     영주시민신문

 

자판기 앞에서 콜라의 기분을 생각했어

                                                 

                                           -박기린

동전이 딸각 들어가면

제일 인기 있는 걸 알면서도

콜라는 조마조마할 것 같았어

 

내가 반장 선거 나갔을 때처럼

사이다에 밀리면 어쩌지

물은 맹탕인데 설마 아니겠지

 

걱정이 뽀글뽀글 올라와

속이 새카맣게 탈 것 같았어

 

철컥!

 

자판기에서 콜라가 뽑혔어

짜릿한 맛이 어디서 오는지 알겠어

 

-들키길 바란 마음

‘마침내 내 차례인가?’ 설레며 대기하던 콜라가 깜짝 놀랐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다가와 음료를 꺼내 먹어도 본인이 마실 음료의 입장이 되어 준 걸 본 적은 없었거든요. 무심히 동전을 넣고 원하던 음료만 꺼내면 그만이었잖아요.

간혹 못된 사람이 있어, 이유 없이 몸체를 뻥 차이기는 했어요. 한 개 값의 돈만 넣어 놓고는 닥치는 대로 눌러 버리는 바람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는 것도 부지기수였고요. 하필 자판기 앞에서 가래침을 홱 뱉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치를 떨기도 했지만요.

재미라곤 없는 갇힌 공간 속에서도 사이다 친구, 물 친구와 함께 누군가의 목마름을 풀어줄 때를 기다렸어요. 때론 친구처럼, 때론 경쟁자처럼요. 그러면서 내(콜라)가 인기가 많다는 것도 알아서 은근히 재기도 했어요. 그렇게 조바심도 좀 생겼고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손님이 있었네요. 불안감 버리려던 바로 그때 말이에요. 어쩌다 보니 진짜 주인공이 되어버렸어요.

마음을 들켜서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철컥!” 뽑혀서일까요? “짜릿한 맛이” 두 배로 강해진 콜라가, “뽀글뽀글” 부풀면서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