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96] 12월의 독백

김경미 시인

2023-12-14     영주시민신문

            12월의 독백

                                             -오광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그래도, 그래도 말입니다

올 한해도 허투루 살지 않았는데,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주눅 든 주름만 사정없이 잡히는 까닭은 왜일까요? ‘덜렁 달력 한 장/ 달랑 까치밥 하나/ 펄렁 상수리 낙엽 한 잎/ 썰렁 저녁 찬바람/ 뭉클 저미는 그리움’(손석철, 「12월 어느 오후」)이란 짧은 시마저 우연처럼 심금을 울리는 계묘년 끝자락입니다.

연말을 보내는 각자의 방식이 있겠지만, 시를 읽으며 아쉬움을 달래는 방법도 썩 괜찮은 것 같습니다. 축약과 묘미가 번득이는 시를 읽다 보면, 저절로 회복의 시간이 충전되기도 하니까요. 세상이 급속도로 변해갈수록 비움처럼 아름다운 여유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뜻깊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래도 말입니다.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으로 또다시 손 내미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듣고 싶은 말, 간직하고 싶은 말들에 마음 얹어서 따듯한 숨도 양껏 불어 넣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가는 2023년에 대한 경외와, 다가올 2024년에 대한 기대로 꽉 채워진 책장을 넘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