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91] 가을 햇살
김경미 시인
가을 햇살
-황인숙
파란 자동차 보닛이 하얗게 스쳐가는데요
바람은 하늘을
비눗방울처럼 가벼이 치켜올리는데요
사람들은 마주 웃고 햇빛은 창창한데요
나는 얼른 나무 그늘에 숨었어요
나는 입을 꼭 다물었어요
(잇새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자꾸만 눈물이 흘렀어요
내 얼굴은 으깨어진 토마토
어두워지기 전에는 한 발짝도
예서 나를 끌어낼 수 없을 거예요
(웃음은 웃음을 늘게 하고
눈물은 흘릴수록 많아지는 것)
맨 처음 만날 때의 그를 생각해 보았어요
그때의 그가 나를
이렇게 울게 할 수 있었을까요?
두 번째는? 세 번째는요?
-그리고 지금,
입동 지난 하늘이 조금씩 내려오고, 동면에 들 동물들은 땅속에 굴을 팝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올가을 맑고 푸른 한 날, “으깨진 토마토”처럼 나의 슬픔이 소환돼 옵니다. 혀가 짧아 못다 한 말을 남기듯 “비눗방울처럼 가볍고 창창하던 햇빛”이 사위어갑니다.
타인을 바라보듯 관찰한 이 시는 시적 대상과의 공간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시적 화자는 객관화됩니다. 슬픔에 거리를 두면서도 은연중 슬픔을 조금은 가지고 놀고 있어요. 익살처럼 표현된 슬픔은 내 것이지만, 타인의 그것처럼 그늘에 숨겨둡니다. 굳이 이해시키거나 전달하지 않으면서 슬픔을 느끼게 하고 체험시키는 것처럼요.
가을 햇살을 만날 때, 울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맨 처음 그를 만날 때처럼요. 그러나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더더욱요. 가을을 보내기 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듯 다음 가을, 또 다음 가을을 보내면서 자연의 그물망에 올라탄 위로가 반짝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