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90] 날라리 진혼곡
김경미 시인
날라리 진혼곡
-신미균
길을 가다 개똥 밟았다
앗
휴지도 없고
땅바닥에 문질러도 소용없네
냄새는 나는데
모처럼 애인 만나러 가는데
앗
쇠뜨기풀이 보이네
미안해 살살 문지를게
구두 뒤축과 바닥사이 움푹한 곳은
안 닦이네
미안, 네 사이사이 좀 헤집어서 해볼게
앗, 구두는 깨끗해졌는데
네가 꺾이고 파헤쳐지고
짓이겨지고
하필 네가 여기 있어서
나도 모르게
느닷없이, 미안미안
돈을 줄 수도 없고
미안미안 정말로 정말로
말로만 미안
-돌발 이벤트
“모처럼 애인 만나러 가는” 설렘 중이었는데요. 심술쟁이 악마가 앙증맞은 장난을 쳤네요. 마음이 급하다 보니 어릴 때 똥꼬를 닦아주던 풀이 소환되었어요. 대충 수습하고 나니 그제야 널브러진 풀이 보여요. 급하게 사과를 했는데도 마음은 개운치 않아요. 그런데 왜일까요? 시적 화자가 말로만 한 사과인데도 독자에겐 진정성이 느껴지거든요. “미안”이란 단어가 일곱 번이나 써진 것과는 별개일 텐데 말이에요.
쇠뜨기풀은 뽑고 돌아서면 올라오고, 뽑고 돌아서면 올라와 풀 뽑던 사람 땀 닦을 겨를조차 안 주기로 유명한 풀이잖아요. 질긴 뿌리와 번식력으로 징글맞게 굴더니 똥 묻은 구두를 닦느라 “꺾이고 파헤쳐지고/ 짓이겨”져 버립니다. 피장파장인가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일을 시로 읽으니 더 와 닿아요. 누군가에겐 다행한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허리 꺾일 아픔이 되기도 하는… 이렇듯 두 개가 서로서로 맞물리니 간질간질한 재미가 있어요. 그러니 가끔은, 좋아도 들뜨지 말고 나빠도 기죽지 말기로 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