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89] 아파트가 동네에 이사 오다

김경미 시인

2023-10-26     영주시민신문

아파트가 동네에 이사 오다

                                               -김수엽

모래를 시멘트와 비벼 먹은 레미콘이

몸뚱이 빙빙 돌며

멀미가 나 토하면

비로소

솟아난 골격 높이 오를 가문이다

 

노동을 밟고 커간 부잣집 동네에는

불빛을 가득 채운 유리창 네모마다

봄꽃도

향기와 함께 집들이에 초대된다

 

허공을 타고 올라간 부러운 발자국이

층층이 착륙한 곳에서

웃음들 넘쳐 떨어져

단층집

지붕 지붕에 시끄럽게 쌓이는 밤

 

높이에 짓눌려서 쪼그라진 집집이

어둠에 포장된 채

저항을 잊은 저녁

분주한

자동차 소리만 주는 대로 삼킨다

 

-비교의 역습

누군가 ‘인생에서 10억보다 비싼 게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들이 쏟아질까요? 별의별 생각들이 나왔지만 가장 호응을 얻은 것은 11억이었다고 합니다. 얼핏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나요? 이게 바로 비교의 역습입니다. 비교는 일단 보여야 하고 고만고만한 데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상상이든, 현실이든 10억의 가치와 기쁨을 느끼고 있는데 11억이란 숫자가 훅 들어와 자괴감이 돌게 한다나요.

조용했던 동네가 갑자기 부산하더니 “솟아난 골격 높이 오를 가문”처럼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노동을 밟”은 그들의 웃음이 떨어져 “단층집/ 지붕 지붕에 시끄럽게 쌓”이는 동안, 조급증과 비교 사이에서 자동차 소리만 분주합니다. 형편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실적 형편과 심미적 형편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마음 챙김에 달렸겠지요.

역습은 이 시조에서도 보여줍니다. 시적 화자는 보는 듯 안 보는 듯 높고도 똑같이 생긴 네모 유리창에서 시선을 거둡니다. 즉, 정격배열만을 고집하지 않고 리듬이나 의미에 맞추어 행을 나눴습니다. 아파트는 아파트대로 단층은 단층대로 그럭저럭 비벼대는 현대의 모습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