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84] 동네 한 바퀴
김경미 시인
2023-09-14 영주시민신문
동네 한 바퀴
-권옥
윤수 젓가락
하루 세 번 우리 동네를 기웃기웃
콩나물네 집으로 들어갈까 말까
문 앞에서 한참 망설이고
김치네 집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휙 지나가고
된장국네 집 앞에선 냄새난다고
코를 막고
새로 이사 온 소시지네 집만
들랑날랑 바쁘다
-입맛과 눈맛 사이
평범하면서도 깔끔하게 차려진 밥상을 동네로 표현했네요. 윤수가 잡은 젓가락이 두 발이 되어 ‘동네 한 바퀴’를 돕니다. 어쩌다 한 번 먹는 콩나물 집엔 망설임이 살고, 발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김치 집엔 부딪히기 싫은 도깨비라도 사는가 봐요. 냄새나는 된장국네 집에선 건강이란 친구가 훌쩍이면서 윤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짭짤하게 입맛을 당기는 소시지 집을 두고는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동생과 눈치 싸움을 할 것도 같습니다.
아이들 눈엔 날마다 앉는 식탁조차도 신기한 동네로 보입니다. 정겹게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때론 툭툭대기도 하는,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또 누가 알아요? 콩나물네, 김치네, 된장국네 집은 매일 들리고 그 좋아하던 소시지네 집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날이 올지...
동시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인지와 정서의 표현입니다. 동심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장르기도 하구요. 생활에 깃든 정직한 고백이 태연하게 표현된 이 동시, 맛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