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81] 벌새, 벌새
김경미(시인)
2023-08-24 영주시민신문
벌새, 벌새
-장은수
채찍 같은 바람 앞에 동아줄 움켜쥐고
고층건물 허리춤에 대롱대롱 사는 사내
붉은 목 벌새 한 마리, 입김만이 하얗다
아득한 수직 벽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면
도시의 굽은 길도 허리를 곧게 펼까
세상에 흘린 발자국 닦고 또 닦아낸다
땀에 젖은 깃털을 노을빛에 씻어놓고
밤새워 신음해도 풀지 못한 하루치 매듭
첫새벽 어둠을 밀고 하늘로 날아간다
-사내, 사내
건물과 건물 사이에 사내가 끼어 있습니다. 벽과 벽 사이에 신음이 꽂혀 있습니다. 빵과 빵 사이의 패티처럼, 절망과 허공 사이의 자맥질처럼요. 대롱대롱한 삶을 말아 “아득한 수직 벽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며 부랑한 삶의 위치를 잽니다.
사내는 허기진 이력서를 몇백 장이나 구겨 보았을까요? 모멸감으로 구겨진 넥타이는 또 몇 번이나 잡아당겨 보았을까요? 생계의 입구와 출구 사이에 낀 노동에 뒤틀리면서도, 마지막 보루로 가지고 있는 “어둠을 밀고 하늘로 날아”갈 뛰어난 비행능력에 희망을 겁니다. 그래야 역경인 줄 알았던 사내의 아득했던 시간도 낭만일 수 있으니까요.
그는 정말로 벌새일까요? 병든 건물 사이에서 겨드랑이 뒤척이는 “붉은 목 벌새 한 마리, 입김만이 하얗”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