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78] 안녕을 안경이라 들을 때

김경미 시인

2023-07-28     영주시민신문

안녕을 안경이라 들을 때

                                   -박지웅

 

너는 안녕이라는데 나는 안경이라 듣는다

 

너는 안경을 안녕으로 바루어 주고

나는 안녕을 다시 안경으로 고쳐 쓴다

 

안 보여? 너는 눈썹을 모은다

네가 내 흐린 안경알을 문지르는 동안

우리 사이에

사이가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안경을 끼니 안녕의 세계가 선명해진다

네가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안경의 세계와 안녕의 세계는 얼마나 다른가

나는 처음 보는 세계로 들어간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안녕이 자꾸 콧등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나는 안녕을 끼고 안경을 닦고 있다

 

 

-깨끗한 반응점

시력은 나쁜데 안경을 안 쓰고 버티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안경 쓴 얼굴이 안 쓴 얼굴보다 못 생겨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요. 사물을 보려고 눈을 부라리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동안에, 아는 사람의 인사를 지나치고 중요한 문서의 핵심을 놓친 적도 많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못 보는 동안 오해의 주름도 꽤 늘었습니다.

눈의 안경도 이러한데, 말의 안경은 또 어떨까요? “우리 사이에/ 사이가 불편한 자세”가 되는 건 소통의 어긋남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빨강이라고 했는데 A는 붉음으로, B는 분홍으로, C는 주황으로, 심지어 D는 검정으로 들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잖아요. 말과 말, 시선과 시선, 그 허공 사이를 헤매면서 조립되고 편집된 이면이 엇갈린 관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언뜻 그냥 뱉었거나 주워들었던 말을, 안경을 끼고 다시 되새겨 봅니다. ‘아! 그때 내 말은 이랬는데, 너의 그 말은 그런 뜻이었구나…’ 무심코 넘겼던 말이, 의식하지 못했던 마음이 한 번 닦은 안경을 끼고 보니 역동적으로 춤을 춥니다.

오늘도 “나는 안녕을 끼고 안경을 닦고 있”습니다. 안녕을 벗으면 안경도 흐릿해질까 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