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75] 삼색 볼펜
김경미 시인
2023-07-07 영주시민신문
삼색 볼펜
-박지영
비좁아도 다투는 법 없지요
색깔 다르다고 놀리는 법 없지요
먼저 나가려다
넘어지는 일도 싸우는 일도
절대 없지요
그런데
나보다 인기 많은
검정, 파랑 친구
키 쑥쑥 줄어들어요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은데
오래오래
같이 놀고 싶은데
-빨간색이 좋아지는 이유
인기일까요? 비교일까요? “비좁아도 다투는 법 없”고, “색깔 다르다고 놀리는 법”도 없고, “먼저 나가려다/ 넘어지는 일도 싸우는 일도/ 절대 없”는 볼펜조차 세 가지 색이 함께 모여 있다는 이유로 검정, 파랑이 “나보다 인기 많은”이란 생각이 드나 봐요. 빨강의 특별함은 저 혼자 모르면서 말이에요. 아니 알면서도 자주 쓰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그 특별함의 가치를 모르는 것일까요?
이 동시는 “오래오래 같이 있고, 같이 놀고 싶”다는 아이의 순수한 바람을 노래한 것인데요. 낡아도 한참 낡은 눈을 가진 저는 성공, 비교, 상실감을 곁들여 읽고 있네요. 사람이나 물건이나 쓰임에 따라 본연의 척도가 달라질 뿐,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요.
어머머! 저도 모르게 가르치려는 말투가 또 나왔네요. 아이의 시선은 멀리 달아나버렸나 봐요. 나이 들수록 빨간색이 좋아지는데 고칠 게 많아서, 가릴 게 많아서 그렇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