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73] 정전
김경미 시인
정전
-정종숙
깜박 불이 나갔다 불이 났나 사람들이 황급히
뛰쳐나온다 이 아파트에 7년 살았는데 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다 모른 척
하는 사람이다 모른 척하는 게 편한 사람이다
화단에 핀 산수유꽃과 인사하는 게 편한 사람
이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전화한다 엘리베이터
에서 강아지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두드려본다
119 소방대원이 와서 여기저기 살펴본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니까 노인들이 집에 못 간다
휠체어 타고 나온 노부부도 집에 못 간다
우리 집은 1층이라 노부부를 모시고 왔다
촛불을 켰다 할아버지는 소파에서 어두워지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뇌졸중이 한쪽 뇌가 정전된
거라고 했다 촛농이 흘러내리고 촛불이 흔들렸다
-현상의 뒷면
자연의 경고일까요? 요 며칠 날씨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맑다고 마음 탁 놓고 있는데, 돌풍이 불고 우박이 쏟아져 우리 지역 농가도 적잖은 피해를 보았는데요. 이처럼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들이 우리 삶에도 자주 일어납니다. 봐요! “깜빡 불이 나”가면서 정전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비당하는 상황을요. “처음 보는 사람”, “모른 척하는 사람”, “모른 척하는 게 편한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일로 우왕좌왕합니다.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와 촛불을 켜도 “소파에서 어두워지”는 할아버지는, 주름만 가혹한 미간을 타고 늘어지는 예민한 숨소리만 토하고 있네요. 평생을 지탱했던 압축파일이 터져 물비늘 반짝이는 강가에 닿은 듯 말이에요.
정전과 뇌졸중을 연결하다니요. 과연 압권입니다. 거기다 소란스러움의 극점에 있는 상황을 양행 걸침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서사와 화자의 담백한 결합에, 감정하나 들이지 않고 담담하게 썼는데도 ‘덜컹’ 독자들의 가슴을 내려앉게 합니다. 정전을 겪고 거슬러 받은 시 한 편이 날개를 다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