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70] 맹인부부
김경미 시인
맹인부부
-안상학
길을 보지 못하는 그들이
길을 묻는다. 침술원이 어디냐고
길을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저기 있어요. 손으로 가리키다가
말문이 막힌다.
소매를 잡고 길을 간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눈을 감아본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살면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엄살 떤 적 있었던가
침술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귀를 쫑긋 세우는 맹인 침술사
불도 켜지 않은 채
맹인부부의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눈다.
거리로 나서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다.
햇살이 더 어둡다.
-길을 묻는 그대에게
“눈앞이 캄캄”할 때면, 사방이 밝아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말문 먼저 막혀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사람이라서요. 사람 때문에요. 항상 밝을 것 같았던 햇살도 갑의 위치에 서게 되면 암흑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가혹해집니다. 상식으로 알았던 밝음과 어둠의 명확한 개념이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지요.
맹인부부나 맹인 침술사는 어둠이라는 구박데기와 평생을 함께 사는 대신,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귀라는 예쁨쟁이와 함께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요. 날마다 눈은, 귀를 형님이라 부르며 공손히 모시고 삽니다. 그 든든함에 어둠 따위는 시련도 잽도 안 됩니다.
정작 “눈앞이 캄캄”한 사람들은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가는 우리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지표 없이 살아내야 하는 삶 앞에서 캄캄하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요? 다만, “소매를 잡고”,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며 함께 살아갈 가족과 사회가 있어 안심할 뿐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바르게 걷고 있다고 자신했던 길도 다시 한 번 점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