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68] 빙열氷裂을 읽다
김경미 시인
2023-05-18 영주시민신문
빙열氷裂을 읽다
-민진혜
냄비 속 고등어 등, 파도가 출렁인다
얼결에 그를 안은 접시 가득 갇힌 물결
뒤집어 살 발라내는 늙은 손도 주름이다
아홉 달 산을 품어 달 빚은 어머니가
품 안에 재웠다가 타래 풀어 엮는 저녁
막사발 민낯에 꽂힌 감국 향이 저리다
땀으로 채운 이력, 주름과 균열 사이
굽은 등 휘몰아치던 너울마저 사라지면
파도를 두고 간 바다, 고요 다시 환하다
-존엄을 읽다
빙열(氷裂)은 도자기류 찻잔을 구울 때 바른 약에 미세한 금이 간 것을 가리킵니다. 유약이 갈라진 틈으로 찻물이 스며들어 세균이 번식할 수 있어 비위생적이라고도 하지만, 찻잔이 노화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릇장 깊은 곳에 봉인을 당하든가, 빙열 있는 찻잔만 고집하는 사람을 만나 마땅한 쓰임을 하기도 합니다.
출산하기까지, “아홉 달 산을 품어 달 빚는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물컹하지 않나요? 이처럼 모든 일에는 “냄비 속 고등어 등, 파도가 출렁”이는 것을 시작으로 “파도를 두고 간 바다, 고요 다시 환”할 때까지 땀 아닌 것, 주름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어떤 일에 사력을 다하면서, 스며들면서 견뎌냅니다. 순간, 휘청거리기도 하겠지만 그게 바로 본연의 길임을 알고 있으니까요.
완벽을 위해 사용된 상흔들을, 과연 공식적인 숫자로 나타낼 수나 있을까요? 귀한 것에 대해 온전한 이해와 겸손한 예의를 갖춘 이 작품이, 그래서 더욱 눈에 꽂히는 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