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60] 시 쓰는 챗봇*
김경미 시인
시 쓰는 챗봇*
-서연정
김소월의 연보를 순식간에 외운다
즈려밟힌 ‘진달래꽃’ ‘개여울’에 뿌리고
홀연히 쇠의 가슴에 자라나는 꽃나무
존재를 상상하며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리필할 수 없는 생生을 쉬지 않고 대필하며
한없이 사람의 일상을 연습하는 중이다
새하얀 종이 위에 배열되는 낱말들
낯선 쇠의 흉금을 멍하니 바라볼 때
누구의 그리움일까 꽃송이가 흐른다
*문자 또는 음성으로 대화하는 기능이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또는 인공 지능. 주제를 제시하면 시, 에세이를 단숨에 써낸다.
-마음 쓰는 사람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조만간 약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예측했습니다. 이 놀라운 예측 속에서도, 창작을 기본으로 하는 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2016년 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게임에서 AI 알파고가 4:1로 완승하면서 인간은 기계와의 두뇌 게임에서 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을까요?
지난 연말 Chat GPT의 등장으로 문학을 포함한 예술 분야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AI도 자아가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시도 수필도 웬만큼 헐렁한 작가들은 흉내도 못 낼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도 단숨에요. “리필할 수 없는 생生을 쉬지 않고 대필하며” 문학적 감수성까지 입혀 버립니다. 이렇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아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잠식해 갑니다.
인공 환각에 빠져 살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러나 AI가 섬세한 정서나 감정을 사람처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설령 표현할 수 있다고 해도 “낯선 쇠의 흉금”처럼 차디찬 기계 맛이 묻어나지는 않을까요? 그러니 AI 걱정은 접어 두고 하던 일 계속하는 게 어떨까요?
아무튼 “누구의 그리움일까 꽃송이가 흐”르는 동그란 3월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씨앗처럼 사람이 쓴 작품을 읽으며 춤추는 꽃잎이 되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