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56] 달고나 판화

김경미 시인

2023-02-24     영주시민신문

달고나 판화

-Daisy Kim

감정은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진열되어 팔리지

텅 빈 상점 앞에서 우산이 걸어오는 소리는 발음할 수 없어

너는 아직 아무도 잘라먹지 않은 얼굴을 하고 눈동자 속에 설탕 덩어리를 녹이며 서있지

저녁은 노을을 한 국자 떠먹은 표정으로 어제의 그늘을 복사했지

어둠을 삼킨 구름의 기분이 똑같이 생겼더라면

깜빡이는 속눈썹을 작은 바늘로 긁어버린 별이 혼자 떨고 있지는 않겠지

그때그때 불빛의 두께를 따라 노릇노릇 구워지는 너는 겨울의 새로운 앞면이었지

가장 달콤한 혀끝으로 어두운 뒷면을 핥는 너는 언제든지 녹는 준비를 하는 설탕주의자

먼 나라의 발끝부터 살살 부서지는 너는 모양의 틀에 갇힌 유년의 얼굴이었지
 

-미리 침 발라놓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이나 추억이 달고나처럼 정해진 틀에 찍힌 모양으로 진열되어 판매된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돌아갈까요?

얼마 전 히트를 했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 덕분에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놀이가 하나 있습니다. 두근두근! 어릴 때 처음 접해봤던 달고나 만들기. 별것도 아닌데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이마에 땀까지 송골송골 맺혔던 기억이 납니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지만요.

바로 버려도 아쉽지 않을 국자에 설탕을 녹입니다. 거기에 소다를 넣고 젓다가 적당히 부풀면 판에 붓고 모양 틀로 찍으면 완성. 아니지 완벽한 완성은 입김 살살 불면서 테두리 조심조심 떼어서 부서지지 않게 원래의 모양(제일 쉬운 건 동그라미, 제일 어려운 건 우산)을 유지하는 것 까지겠죠.

반가운 시 한 편을 만나 기억의 뒤뜰을 걷는 동안 “모양의 틀에 갇”혔지만 “언제든지 녹는 준비를 하”던 겨울이 물러나려나 봅니다. 겨울이 녹고 달큼한 봄이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