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40] 연인들

김경미(시인)

2022-10-28     영주시민신문

연인들

-이나명

노란 은행잎들 팔랑팔랑 날아내리는

공원 벤치에 두 사람 앉아있네

허허로운 공중에서 잠시 바람 일고

구두코에 떨어지는 은행잎 같은 말들

구둣발에 밟히는 아득한 말들

구둣발 아래 지그시 눌려 침묵하는 말들

우리들 팔랑팔랑 돌아다니던 세상

나비 날개 접듯 살폿 접고 나면

현란한 저 노란빛들 흙 묻어 흙빛 되어 오래 섞이네

먼 세상 누군가의 뇌리 속에 숨어있는 한 장면인 듯

공원 벤치에 두 사람 앉아있네

 

-낫낫한 가을 한 폭

마음이 간질간질해집니다. 괜스레 아련해집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숨소리 낮춰가며 외롭지 않을 가을 한 점과 간격에 매료되었습니다. “우리들 팔랑팔랑 돌아다니던 세상// 나비 날개 접듯 살폿 접고” 지긋한 고요에 듭니다. 시로 보는 고요는 늘 고요함 이상입니다.

할 말 없으면 손이나 잡을까요? 그저 마주 보며 웃기나 할까요? “은행잎 같은 말들”, “아득한 말들”, “침묵하는 말들”처럼 모든 말들은 풍경이 대신해 주니까요.

사랑인 줄도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한 번쯤은 다 있었겠지요. 기억에도 향기가 있듯 세월이 가도 여전히 너였던 게, 우리였던 게 새삼 눈물겹습니다. 기억처럼, 눈물처럼, 또 한 번의 가을이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