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36] 가는 여름이 오는 가을이

김경미(시인)

2022-09-30     영주시민신문

가는 여름이 오는 가을이

-유희윤

매미 앞장세우고
더위 이끌고 여름이 간다
가던 갈음 멈칫멈칫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가을이를 보고 가려고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귀뚜라미 앞장세우고
산득산득 가을이 온다
밤이슬 밟으며
성큼성큼 걸어온다

여름이 가기 전에 오려고
얼굴이나 보고 보내려고

 

-그저, 인사라도
가을이래요. 그래서 가는 여름과 오는 가을이 인사를 나누려고 해요. 까무잡잡한 여름은 “가을이를 보고 가려고”, 볼이 빨간 가을은 여름이 “얼굴이나 보고 보내려고” 서로서로 마음의 준비를 했나 봐요. 그 마음 여름 물처럼 참 맑지 않나요?

그 마음 가을 단풍처럼 참 곱지 않나요? 아마 인사는 나누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별안간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왜일까요?

이 동시를 쓰신 유희윤 시인님은 무려 연세가 여든이신 할머니래요. 손주를 위한 무릎베개를 해 주면서 들려줄 동시까지 쓰셨겠지요? 계절이 바뀌거나 아이들의 순수함이 보일 때마다, 할머니만의 연륜과 경험을 보태서 말이에요.

그렇게 쏙쏙 탄생한 시들이 갖가지 선물로 가득한 바구니처럼 풍성해졌어요. 이런 동시들을 날마다 받아먹다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도 쑥쑥 자라지 않을까요?

가볍고 쉽습니다. 술술 잘 읽힙니다. 그러나 은근한 울림과 깊이가 있습니다. 가버린 여름도 와버린 가을도, 이 동시를 쓴 시인의 마음처럼 도탑고 신실하게 느껴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