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 [33] 환상통 幻想痛
김경미(시인)
환상통 幻想痛
-구수영
벌겋게 달아오른 뿔을 관통하는 햇볕
따끔따끔 나는 지금
무방비로 분절되는 중이다
칠성판 같은 건조대에 누워
치루는 이별 의식은
지난했던 여름 삶을 통째 흔들었던 것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구월은 불을 켜지 않아도
잊지 않고 돌아오는 그림자
늙은 수도사가 바치는 삼종기도
다시 소등되는 하루 얼마나 더
비워내야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까 아직
해감 되지 않은 손톱들이 날을 세우고
돌아보면
매운 내 나는 시절도 선물이었다고
고백하면
꿈꾸지 않고 잠들 수 있을까
-잡고 싶지도, 놓고 싶지도 않은
밤이 와도 잠을 눕히지 못하고 오금을 당기다가 몸을 조여 엎드립니다. 내 안의 마음을 굽어볼수록, 버려진 순간에 깃들여 있던 분절을 통통하게 꺼내 봅니다. 길 잃은 박수조차 나를 외면해도, 애당초 바람 같은 건 타지 않을 거라 자신했는데 또다시 어두운 궁함이 몰려옵니다.
구겨진 힘의 이동에 상심할 때면 갈비뼈 아래에 보이지 않게 달라붙어 있던 탯줄을 끓습니다. 상한 기분을 나뭇잎에 눕히고 넓은 정글에 숨겨 놓았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찾아봅니다. 하늘을 느끼는 마음과 바닥을 걷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 되니까요. 그럴 때면 “매운 내 나는 시절도 선물이었다고 고백하”는 행위가 제일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렇게 내려놓는 것이 서로의 발목을 쓰다듬는 일이 될 테니까요.
유난이란 유난은 다 떨며 살고 있는데도, 허기진 소망은 자꾸만 꿈을 아프게 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알싸한 통증을 견디며 “비워내야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앓습니다. 하찮은 마음이라 쓰고, 자존감이라고 읽습니다. 다시, 나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