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 [32] 밥값
김경미(시인)
밥값
-문태준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을 한술 막 뜨고 있을 때 그이가
들어섰다
나는 그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수레에 빈 병과 폐지 등속을 싣고 절룩거리며 오는 그이를
늦은 밤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이는 식당 한편 벽에 걸린 달력의 28일을 오른손으로
연거푸 짚어 보였다
무슨 말인가를 크게 했으나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식당의 여주인은 조금도 언짢아하는 기색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짧은 시간 후에 그이의 앞에 따뜻한 밥상이 왔다
-마음 딱 차려 놓고
한 토막의 삶을 고백한 것 같은 이 시는, 언뜻 평범하고 태평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몹시 긴장하고 자제하고 있는 게 더 크게 보이지 않나요? 외상 밥을 먹겠다는(혹은 28일에 계산하겠다는) 단골은 남루한 몸짓이지만 자존을 문 당당함이 있습니다.
그 약속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여주인 또한 따스한 인간미가 있습니다. 이런 “따뜻한 밥상”도 크고 세련된 식당에서는 어림도 없을, 허름한 식당에서만 가능하겠지만요.
이 모습을 지켜보는 시인은 또 어떤가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알아도 모르는 척, 모르면 더욱 모르는 척하는 배려와 함께요. 이것이야말로 차분하고 명확한 인간관계의 핵심을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요? 기쁘다고 꼭 웃어야 하는 게 아니듯, 슬프다고 꼭 울어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요.
우리의 삶이 결코 놀이나 장난이 아니듯, 치열하지 않은 순간은 없습니다. 요란이란 요란은 다 떨면서 살아내도 만만치 않았겠지요. 그러나 견뎠겠지요. 이렇게 무너지는 자존감을 세워 주며 한 끼를 나누는 사람들 덕분에요. 이 시를 읽은 후 한층 밝아진 나를 꺼내 먹는 것이, 진정한 해피엔딩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