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31] 초승달

김경미 시인

2022-08-18     영주시민신문

초승달

-박화남

뒤집어
벼린 밤을
다시 한번 뒤집어서

금은화 비린 울음
한 줌 깊이
베어내고

굽은 생
펴지 못한 채

조선낫이 된
아버지
 

-빛인 듯 자취인 듯

어느 기억 속에 끼워질 삶의 한 컷이 이토록 처연할까요? 어둠이 내려오면 가늘게 드러나는 달. 만만치 않은 걸음으로 견뎠을 아버지의 굽은 등이, 쓸쓸해지는 하늘가에 숨통같이 잘게 버팁니다. 늘 처음처럼 마지막을 준비했을 온전한 겸허로 말이지요.

시련이 일상인지 일상이 시련인지, 수습하지 못한 하루를 자책하면서 올려다본 밤하늘엔 순응한 눈빛 같은 잔잔한 밝음이 있습니다. 딱 그만큼의 비춤이 있습니다. 아버지란 그런 것입니다. ‘벼르고 뒤집으며’ 기다리는 빛입니다. 하늘 보면 초승달! 아니, 하늘 보면 언제나 아버지, 아버지.

간간이 아버지가 그리운 저녁쯤에 하늘을 보면, 인동초(금은화의 다른 이름)처럼 “굽은 생/ 펴지 못한 채// 조선낫이 된/ 아버지”가 초승달로 떠 있을 것 같습니다.

정형의 틀에 앉혔지만 묶이지 않은 상상력과 자유로움이 헤엄치고 있는 이 작품은, 몇 글자 안 되는 단시조입니다. 그러나 짧지만 선명하게 입힌 이미지 덕분에 구구절절한 장편 시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