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23] 와플 굽는 여자
김경미 (시인)
와플 굽는 여자
-김정미
마트 앞,
달 굽는 여자의 등이 동그랗다
그녀의 미소가 봉지 속으로
사르르 쏟아지는 밤,
누군가 잃어버린 희망 한 봉지
따라 들어가고 있다
하루치 밥값이 벌집무늬로 구워지는 동안
슬픔마저 탈탈 털어 넣은 시간이 발효되고
퇴근을 서두르는 젖은 발자국들이 출렁이고
아픈 비늘을 터는 새 떼처럼
바람 부는 하늘을 뒤척인다
달 같은 희망을 와플로 굽는 가을밤
하루가 둥글게 구워지고 있다
-달의 속살을 위하여
“그녀의 미소가 봉지 속으로/ 사르르 쏟아지는 밤,/ 누군가 잃어버린 희망 한 봉지/ 따라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채우는 조물조물한 사치가 동그랗습니다. 제법 진지하기도 합니다. 슬픔을 녹여 낸 단내 나는 달이 뭉근합니다. 감탄사는 일부러 뺐습니다. 부러워서 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은 ‘뻥튀기’라는 또 다른 시를 통하여 “절망하기엔 너무 이르잖아/ 세상과 조금씩 어긋나는 일들은/ 예보와 맞지 않는 날씨 같은 거야”라며 파랗게 밝은 달 또 하나를 “눈부시게 튀겨”내기도 합니다.
달빛이 내립니다. 달빛이 오릅니다. 당신이라는 달의 속살은 이미 따끈해졌을까요? 몇 번쯤은 애달프다가도, 세상과 사람들을 비추기 위하여 ‘와플 굽는 그녀’를 생각합니다. ‘뻥튀기는 그’를 생각합니다. 어쩌다 달빛이 흐르는 날이면, 도덕책 같은 정갈함으로 꽉 찬 달콤한 와플과 고소한 뻥튀기를 입에 물고 있을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들만 보는 눈으로는 이런 시가 나오지 않겠죠. 납작한 슬픔을 앞에다 두고도 공감과 위로를 주는 시는, 사소한 것 하나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본 시인의 아름다운 마음 덕분에 탄생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