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19] 슬리퍼
김경미 시인
슬리퍼
-이재무
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슬리퍼처럼
편하고 만만했던 얼굴이 떠오른다
슬리퍼는 슬픈 신발이다
막 신고 다니다 아무렇게나 이곳저곳에
벗어놓는 신발이다 언감생심 어디
먼 곳은커녕 크고 빛나는 자리에는
갈 수 없는 신발이다
기껏해야 집 안팎이나 돌아다니다
너덜너덜해지면 함부로 버려지는 신발이다
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안개꽃같이
누군가의 배경으로 살았던
오래된 우물 속처럼 눈 속 가득
수심이 고여있던 얼굴이 떠오른다
-배경이 된다는 것
신발장을 열면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리의 종류와 품격에 따라 외출했다가, 돌아와서는 깨끗이 닦인 뒤 신발장 속에서 다음 외출을 기다리지요. 그러나 여기 구색을 갖춘 자리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신발장 속에도 들어가 보지 못한 신발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질질 끌려 다니다 현관에서조차 아무렇게 내팽개쳐지는 신발이지요. 그래서 “슬리퍼는 슬픈 신발이다”라고 했을까요?
“누군가의 배경으로 살았던/ 오래된 우물 속처럼 눈 속 가득/ 수심이 고여있던 얼굴”은 누구일까요? 시인은 이 시를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썼다고 합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누군가에겐 연인, 누군가에겐 길가에 떨어진 꽃잎을 쓸던 노인, 또 누군가에겐 낡은 뱃머리에서 어긋난 그물을 올리던 어부가 될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누군가의 뒤를 받쳐주는 희생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에게 보내는 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누군가의 배경이 된다는 것, 말처럼 쉬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도 슬리퍼는 제 역할을 묵묵히 합니다. 또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고자 욕심내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거룩한 자세일까요? 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고맙다, 고맙다 하면서 한 걸음 마음을 얹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