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13] 실마리

김경미 시인

2022-04-08     영주시민신문

실마리

-전순복

쌀 포대를 뜯을 때마다
실밥을 제대로 풀어본 적이 없다

굳게 다문 그의 꼬투리
숨겨놓은 실마리를 찾는다면
단번에 매듭을 풀 수 있을 텐데

마음의 물꼬를 튼다는 일
결코 쉽지 않듯

매듭 푸는 법을 터득 못 해
가위로 잘라버린 인연들이 많다

 

-찬찬히, 그래도 안 되면 더 찬찬히

맞습니다. 무릎을 탁! 칩니다. 저도 “쌀 포대를 뜯을 때마다 실밥을 제대로 풀어본 적이”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풀어보긴 합니다만, 그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버립니다. 평화롭게 모여 있던 쌀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얼마나 황망했을까요?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야기 끝에는 늘 반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듣지 않거나 지레짐작으로 오해의 씨앗을 모으고, 그것들을 성급히 묶어 버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리고는 마음 깊이 묻어 두고 못질까지 해 버립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앙금이 적금처럼 쌓이기 시작합니다. 몇 번쯤은 “숨겨놓은 실마리”를 껴안고 베개를 끌어다가 울기도 합니다.

살아서 얘기해야 합니다. 살아서 풀어야 합니다. “마음의 물꼬를 튼다는 일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묶었던 마음은 내가 먼저 풀어야 합니다. 바람 앞 소나무처럼 버티는 대신 풀처럼 눕는 지혜로 말입니다.

쌀 포대를 뜯는 사소한 일조차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놓쳐버린 인연으로 풀어낸 시인의 능력이 마음을 감전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