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 아영[2]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김경미 시인

2022-01-17     영주시민신문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이병률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향기로운 밀당 한 컷
우연히 들린 술집에서 할머니를 안고 가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사람이야 가든 말든 은근슬쩍 놓은 꽃다발은 아직도 조바심 중인가 봅니다. 손 한 번 잡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손 한 번 잡혀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대단할 것 같은 인생도 고작 한 바퀴입니다. 그 한 바퀴가 돌아가는 동안은 귀하게 여겨야 할 마음 몇 가닥쯤은 있겠지요. 어제의 어제를 넘어, 삶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작고 소소한 것들이 눈물겹고 귀해집니다. 이 시 처럼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더욱 삭신이 쑤셨을 할머니는 한 다발의 꽃과 마음으로 온 밤이 달콤해집니다.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햇볕 한 장 마음 놓고 들인 듯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