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의 문화 확대경 [109] 암자 터에 위치한 순흥향교

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2017-06-30     영주시민신문
▲순흥향교에서 초석으로 사용하고 있는 연화좌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을 제사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관립 교육기관이다. 그러기에 조선조 전국의 부·군·현에는 반드시 하나씩 향교가 배치되어 있었다.

순흥부(順興府)의 순흥향교(順興鄕校)는 고려 충렬왕 때 처음 창건되었다가 세조 때 단종복위사건(일명 정축지변)으로 인해 고을과 함께 혁파당하여 약 200년 동안 향교가 없어졌다. 후일 숙종 때 부(府)가 복설되면서 다시 찾아 세웠다 한다.

북쪽 금성(金城)이 습하여 일부 건물이 허물어지자 부의 남쪽으로 옮겼다가 수해로 인해 석교촌으로 이건하는 등 여러 차례 위치를 옮긴 끝에 정조 14년(1790) 지금의 자리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순흥향교 계단에 있는 연화좌대

순흥향교의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는 강학당인 명륜당을 비롯하여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했던 동재 등이 있다.

전체적인 건물배치는 교육공간을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 이렇게 모두 39위 성현의 위패들이 봉안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교육시켰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대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한다. 현재 전교 1인과 장의, 수인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순흥향교의 위치는 소수서원(옛 숙수사지)에서 서북쪽으로 700m 거리 산 언덕바지에 자리하고 있다. 청다리마을이 아래로 기대어있는 언덕바지는 산으로 보기에는 너무 야트막하여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그 언덕배기에 정 남향으로 단정하게 얹혀있는 건물이 순흥향교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이 과거 사찰 터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석조 유물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주춧돌로 사용한 초석과 계단에서 발견되는 연화좌대가 그것이다. 그처럼 일찍부터 인적이 드나든 명당으로 보인다.

소수서원이 숙수사라는 사찰 터에 위치한 서원이라는 것은 익히 아는 바이나, 순흥향교가 사찰 터로 추측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향교에서 남동쪽으로 내려다보면 숙수사지(현 소수서원)를 감싼 영귀봉(靈龜峰)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정 남향으로는 시원한 정경 끝에 순흥 고을이 한 눈에 잡힌다.

이만한 입지조건이라면 향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함에는 무리가 없을 터. 절의 규모나 창건 연대 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석불 대좌의 형태와 크기 등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통일기의 아담한 사찰 규모를 그려볼 수가 있다.

그리 넓은 부지가 아니어서 향교는 전체 면적을 가득 메워 조성되어 있다. 아마 암자의 규모도 이 이상을 크게 능가하지는 못하였으리라.

주변 지형 등을 감안하다면 그 때도 지금의 대성전(大成殿) 자리가 금당(金堂)이지 않았을까? 이러한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가끔 확인되는 사례라고 한다.

언덕바지에 훌쩍 올라 있으면서도 산줄기가 포근히 감싸는 모양이고, 정면으로는 들판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누가 봐도 명당 터이다.

이런 곳에 향교가 들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향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불교융성시대에 이만한 명당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었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욱 암자의 존재 여부가 궁금해지게 된다.

더욱이 안축(安軸)의 「죽계별곡(竹溪別曲)」에 ‘숙수루(宿水樓), 복전대(福田臺), 승림정자(僧林亭子)’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숙수루는 현 소수서원의 숙수사지, 승림정자는 석교리 건너편 언덕 승림사지로 본다면, 남은 ‘복전대’라는 명칭이 혹 이곳 암자와 관련된 이름은 아니었을지?

어찌되었건 대개의 향교가 인가와 부대끼는 곳에 배치되는데 비해, 순흥향교는 다소 파격적인 위치를 취함으로써 향교의 근엄함을 지켜내기는 좀 더 수월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