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수입업체 실크월드를 경영하는 김주식 사장

"내년쯤에는 모교 발전을 위한 준비 위원회를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과 함께 장학금을 현재 수준의 2-3배 이상 받을 수 있도록 기금을 조성하고 싶습니다.”

 

재경 영주고 동문회 직전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주식(45) 사장의 말이다. 서울지역에 영주고 동문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93년의 일이다. 초대 윤천희 회장을 비롯하여 2대 조철영 회장에 이어 2001년 12월부터 2년간 5대 회장을 지낸 김주식씨는 현재는 직전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재경 영주고 동문회의 기둥’으로 일하고 있다.


재경 영주고 동문회의 기둥

이산면 석포 출신의 김주식씨는 상이용사인 부친이 원호대상자로 지정을 받아 학교에 근무하게 되어 학교(?)와 가깝게 지냈다. 모친도 초등학교 앞에서 조그만 점방을 하여 오가는 선후배들과 친하게 지냈고, 공부도 무척 잘 했다.

 

이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영중학교를 거쳐, 대구나 안동으로 유학을 가려고 고집했지만, 가난한 집안형편에 밀려 포기를 하고 영주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부모님과 유학문제로 끌고 당기는 사이에 고등학교 입학이 남들보다 한 달반이나 늦어져 4월 중순에야 이루어졌다. 재미있게도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지만, 열등반에 편성된 관계로 늘 학급에서는 1등을 했다고 한다. 더구나 아침저녁으로 동기생들을 대상으로 수학을 강의할 정도로 이과 분야에도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주고 교내 장학퀴즈대회에서도 1등을 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하지만 ‘자만이 넘치면 화를 부르는 것’ 2학년이 되면서 이내 성적은 떨어지고 대학도 떨어질 정도로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재수를 하여 조금 늦기는 했지만 아주대학교의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열심히 생활했다.


대학 시절에는 원호대상자 자녀들의 동아리인 호우회 활동을 하면서 노인학교나 사랑의 집 방문 봉사 등을 수행하며 성실히 살았다. 거기에서 배운 리더십과 용기를 통하여 ROTC에 지원 초급장교로 군복무를 하게 된다. 당초에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장기복무를 지원하였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5년이 조금 넘는 군복무를 마치고 대위로 제대를 한다.


하지만 제대하고 나니 사회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2-3년 먼저 제대한 동기들은 취업이 보장되는 분위기였지만, 경기가 내리막에 들어서는 상황이었기에 좀처럼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내어 봤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지방으로 가서 영업을 하거나 공장 근무가 대부분이었다. 


비단수입업으로 자리 잡은 기업인

결혼도 했고 이미 제대를 하면서 서울에 방을 구해 놓은 터라 지방 근무는 어려웠고, 당장 급한 김에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하여 3-4개월 만에 최고의 영업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속했던 보너스나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이내 사표를 내게 된다. 이후 머리를 식힐 겸 홍콩으로 배낭여행을 일주일 동안 갔다.


홍콩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풍물과 사람 사는 것을 배웠고, 돌아올 무렵 우연히 들린 맥주 집에서 홍콩에서 아주 크게 비단판매업을 하는 중국인 포목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화가 잘되어 다음 날 회사로 찾아가 가계약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난 15년간 중국산 비단을 한국에 수입하여 판매하는 비단수입상이 되었다. 

 

그는 현재 강남구 삼성동에서 비단수입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중국과 오랜 무역 덕택에 그의 중국어 실력은 원어민 수준이다. 그래서 늘 농담으로 “중국집에 가면 자장면은 그냥 얻어먹을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는 대학 시절과 군대에서 배운 조직통솔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사업에도 일가를 이루었고, 재경 영주고 동문회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동문회의 기둥답게 그는 은사님 모시기, 골프, 등산 등의 소모임 활성화, 서울을 지역별로 나누어 강북, 강서, 강남 등의 분회모임도 만들었고, 지역 동문회에서는 하기 힘든 회지발간, 주소록이 포함된 수첩제작, 동문회 마크 제작 등의 사업을 주도했다.


지금도 직전회장직을 맡아 체육대회나 송년의 밤 행사에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장기는 동기들과 후배들의 손발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시 참여하고 싶은 동문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은사님 모시기와 새로운 형식의 행사장 자리 배치이다.


사실 졸업한 지 20년이 넘은 동문들이 은사님을 모시는 것은 스승의 입장에서 보자면 교직생활의 가장 큰 보람 중에 하나이다. 늘 기념패 증정과 함께 30분 정도의 인사말을 부탁하는데, 1-2개월 전에 미리 말씀을 드리고 원고까지 준비해 오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모두가 연단에 서면 감격에 눈물만 흘릴 뿐, 단 5분도 제대로 말씀을 하시는 분이 없다고 한다.그 숙연함과 감동이 좋아 매년 은사님을 한 분씩 모시고 있다.


두 번째가 어떤 모임이건 늘 친한 사람들끼리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친분관계로 자리를 정하면 늘 마주대하는 사람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는 관계로 동문들 간의 친분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굴을 잘 모르는 동기나 선후배들과도 처음부터 행사가 끝나는 시간까지 같이 하게 하여 이후에는 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가족동반행사를 늘리는 것이나. 특히 야외소풍이나 야유회에는 반드시 가족동반을 강조한다. 또한 동문들끼리의 모임의 경우에는 언제나 자정 전에는 귀가할 수 있도록 하여 집에서 점수를 딸 수 있도록 돕는 작은 배려도 잊지 않는다. 이런 노력이 영주고 동문회를 발전시키고 자주 모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2대 회장을 지낸 조철영씨와 그는 영주고 동문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동문들은 그를 ‘동문회의 기둥’이라고 부른다.


획기적인 방법으로 영주고를 명문으로 만들 것

또는 그는 동문회장을 그만 둔 작년부터 모교발전을 위한 준비 위원회를 구상하고 있다. 비록 시골 학교지만 후배들이 잘되어야 동문들이 잘된다는 인식하에 동문선배들이 후배들이 잘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이다.

 

우선 기금마련을 위해 동문회 명의로 자동차 보험 등의 상품을 만들어 수익금을 활용하여 모교에 전교생이 입소할 수 있는 기숙사를 만들고, 장학금도 대폭 확대하여 지급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자금이 문제지만, 현재로서는 동문들을 설득하고 사람을 모으는 일에 열심이다.


그의 노력대로라면 영주고는 4-5년 안에 영주지역의 명문고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모교를 찾고, 가족들과 함께 모교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는 일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와 친한 고향친구들과 동문선후배들은 군장교로 복무 중인 권혁철 중령, 사업가인 양철상씨, 중학교 교사인 조동걸씨, 롯데칠성음료의 박헌영씨, 교촌키친의 김재만씨, 벤처사업가인 전형식씨, 건축가인 최길찬씨 등이 있다.

 

용인 수지에 살고 있는 그는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형제를 두고 있는 단촐한 가장이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아이들도 꽤나 공부를 잘 한단다.


(김주식 사장 연락처 017-336-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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