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봉(작가)

삽화 이석희

n번방이니 박사방, 조주빈, 갓갓, 텔레그램 등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들이 매일같이 매스컴을 오르내리면서 우리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협박하고 착취해 엽기적인 동영상을 찍고 그걸 저희들끼리 공유하는 대화방에 올려 돌려보는 것은 고사하고 서로 공모까지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패륜적이고 왜곡된 성(性)의식에 감염되어 있었는지 놀랍고 두려울 뿐이다.

2017년 미국의 여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고발하고 공유하자는 취지로 ‘나도 고발한다’, ‘나도 당했다’라는 의미의 ‘# Me Too’ 운동을 제안한 후 무수한 사례들이 드러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듬해 우리나라에서도 전도가 유망한 정치인과 노벨상까지 거론되던 노시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쌓아온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일을 겪어야 했다. 그 무렵 법정에서 처음 나온 말이 ‘성(性)인지(認知) 감수성(感受性)’이었다. 

영어의 ‘젠더 센서티비티(gender sensitivity)’를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性)은 생물학적인 성(sex)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성(gender)를 말한다. 성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성차별적 요소들을 감지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우월적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상대에게 어떤 형태의 성적 반응이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주빈과 공모자들의 범죄행각을 보면 젠더(gender)가 아니라 ‘sex sensitivity’라는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사이버 공간에 아동착취영상들을 공유하는 방들이 한둘이 아니고 유무료 회원들이 26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더욱 더 우리를 기가 차게 하는 것은 70여 명의 피해자들 중에 13세의 어린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말 아이를 뜻하는 ‘pedo’와 좋아하다의 의미인 ‘philia’가 합해진 ‘페도필리아(pedophilia)’, 즉 소아성애증(小兒性愛症)은 단순한 변태나 성도착이 아니라 정신병증에 속한다. 우리가 모르는 어둠 속에서 어린 여자아이들이 수치스러워 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낄낄거리는 괴물들이 있었다는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이런 끔찍한 사회병리현상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저해져버린 현실에 대한 책임은 물론 우리 사회에 있다. 본질적으로는 성윤리의 붕괴에 그 원인이 있겠지만 유아성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관대했던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법이 너무 물렀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동성착취범죄(child sexual abuse)에 대한 단죄는 철저하면서도 치밀하다. 

1994년, 미국에서는 ‘메건법(Megan's Law)’가 제정되었다. 뉴저지 주의 메건이라는 일곱 살 여자아이가 납치, 강간, 살해당한 뒤 장난감 상자에 넣어져 공원에 버려진 끔찍한 사건으로 만들어진 법이었다. 범인에게는 가석방 불가 사형이 선고되었다. 2005년에 발효된 ‘제시카법(Jessica's Law)’으로 처벌강도가 더 높아졌다.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아홉 살의 제시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은 무기징역 3회+사형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아동성착취 음란물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20년 형을 받는 미국에 비해 조주빈 이전에 n방이라는 걸 운영했다는 워치맨이라는 자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실명도 공개되지 않았고 겨우 1년 6월의 구형을 받고 재판 중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이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한 절대무관용의 원칙을 세워야 할 때다.

우리를 더욱 더 경악하게 한 것은 연행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조주빈의 죄책감이 전혀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인간만이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이다.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羞) 타인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라(惡)’는 맹자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기대하는 게 오히려 부끄러운 일인 것 같아 씁쓸하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끔찍한 범죄가 드러날 때마다 그 범죄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흔히 들어온 말이다.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은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에서 한 말이다. 600만 명의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혐의로 예루살렘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말했다. “나는 잘못이 없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죄다.”

잊을 만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끔찍한 범죄자들의 입에서 ‘이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이 나올까봐 두렵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