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사람 죽고 경제 파탄, 삶이 뿌리 채 흔들려
빠른 종식으로 일상의 소중함 깨우치고 자연 사랑해야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듯하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힘들고 어려워진 지금, 그동안 무심코 지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 사는 지역도 각종 행사가 취소·연기 되고 있지만 (풍기읍 삼가리) 소백산 달밭골 사람들은 “이럴 때 일수록 더욱 기도에 정진(精進) 해야 한다”며 3월 상정일(上丁日)인 지난달 25일 예정된 소백산 산신제를 봉행했다.

 

십승지(十勝地) 마을 달밭골

소백산 비로사 인근 달밭골은 삼국 때는 고승들의 기도처로도 유명했고, 조선 때는 십승지 중 일승지의 으뜸마을로 피난처이자 기도처로 명성이 높았다.

십승지란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전염병, 전쟁, 흉년 세 가지 재앙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을 말한다. 지금 난리치고 있는 코로나 같은 괴질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란 뜻이다.

전덕성(76,달밭골) 씨는 “이곳은 정법도량(正法道場)으로 의상조사(義相祖師)께서 8년간 수도하셨고, 의상이 소백산에서 3천여 명의 제자가 운집한 가운데 90일간 화엄경을 강의했다는 추동(錐洞)이 바로 여기”라며 “그 후 고려 말 나옹(懶翁) 스님이 수행하셨으며, 근세에 와서는 일초(一超) 스님이 득도(得道)하신 곳이기도 하다. 저는 일초스님으로부터 깨달음(解脫해탈)을 얻는 수도(修道)를 배웠다”고 말했다.

전 씨는 또 “십승지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고 수 백 년 동안 목숨 보존처를 찾아 헤매던 낭인들과 떠돌이 민초들, 그리고 깊은 수도처를 구하던 승려와 도사들의 현장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정선자(보살) 씨는 “이곳은 지혜가 열려 있고, 맑고 청명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살고 있는 기도처이다. 밝은 지혜를 가진 자가 나라를 이끌어야 나라가 흥하고, 어리석은 자가 나라를 이끌면 나라가 망한다”며 “이곳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빠른 종식을 위한) 기도에 들어가 벌써 한 달 째 기도 중”이라고 말했다.

 

산신제 준비

이날 오전 9시. 산신각 주변은 금줄이 처져있고, 이번 산신제 유사(有司)를 맡은 전덕성·최은희 씨 부부와 정선자 유사가 자리를 깔고 상을 폈다. 부녀회 양일순·임희숙·김은경 씨는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제수(祭需) 장만에 정성을 다했다. 박덕양·최창권 씨는 제기에 담은 제물을 산신각으로 옮기면 유사가 받아 진설했다.

산신각에는 산신(山神) 영정이 걸려있고 그 앞에 돼지머리, 백설기, 조기, 탕, 밤, 대추, 배, 감 등이 놓여 있다.

전덕성 유사는 “해마다 정월 초 7일이 되면 산신제 유사 2명을 선정하고, 산신제 1주일 전 산신각을 청소하고 주변에 금줄을 친다”며 “산신제 2일전 제물장을 보는데 제물은 돼지고기, 백설기, 3실과, 조기, 포, 소지지 등을 준비한다. 또 부녀회에서는 100여명(오늘은 50명)이 먹을 수 있는 국과 밥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의 도착이 이어졌다. 참제자들은 시도기에 접수하고 산신을 향해 3배하고 앉는다. 이종실(90. 금계리) 어르신은 “코로나가 창궐(猖獗)한 이 때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머지않아 곧 종식될 것”이라며 “선대 때도 고난이 있을 때마다 기도로 평온을 찾았다”고 했다.

 

산신제 본 제사

모든 제관이 도착한 오전 11시 본 제사가 시작됐다. 맨 앞줄에 유사, 축관, 원로 순으로 모두 자리에 섰다.

집사가 촛불을 켜면 소백산 산신이 오셨으므로 ‘신령님 어서오세요’라는 뜻으로 모든 제관이 절을 세 번하는 참신례(參神禮)를 올린다. 진설이 다 되면 정선자(유사) 헌관이 향을 태워(三上香) 하늘의 양기를 부르고, 술을 모사(茅沙)에 부어 음기를 인도하는 강신례(降神禮)을 행한다. 이어 헌관이 신령님께 잔을 올리면 축관이 독축한다.

축문은 「소백산 신령님께 엎드려 비옵나이다. 천지지간(天地之間)에 소백산 신령님이 가장 높고 영험(靈驗, 바라는 바를 들어주는 신령한 힘) 하나이다. 우리나라와 우리마을에 일천 가지 상서로움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일백 가지 재앙이 눈처럼 사라지게 하옵소서. 질병과 전쟁과 도둑과 화재를 막아주시고, 풍년농사와 장사의 직업을 보존하게 하옵소서. 지금은 전 세계가 코로나 창궐로 사람들이 상하고 경제가 파탄 나는 등 삶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나이다. 어서 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어 평온을 찾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비록 적지만 정성껏 차린 제물과 맑은 술을 드리오니 흠향 하시옵소서」라고 고했다.

이어서 참제 원로부터 모든 참제자들이 잔을 올리고 각각 삼배한다.

이제 신령님이 음식을 다 드시고 떠날 시간이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뜻으로 세 번 절하는 사신례(辭神禮)를 끝으로 산신제를 마친다.

 

소지 올리기와 음복연

다음은 소지를 올린다. 소지(燒紙)는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희고 얇은 종이를 불살라 공중으로 올리는 민간신앙이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가족들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면서 소원을 빈다. 이 마을 출신 최영학(금계리) 씨는 “재앙을 태우고 나면 희망이 하늘에 닿는다는 믿음이 있어 산신제에 참석한다”면서 “출향인들도 많이 왔는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고 했다.

음복연은 가마솥 누룽지를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산신제에 참제했다는 최창권(달밭골) 씨는 “제가 어릴 적에는 바위 앞에 제단을 마련하고 산신제를 지내다가 30여년 전 산신각을 짓고 부속 건물도 마련하게 됐다”며 “그 때도 누룽지를 먼저 먹고 가마솥 국밥을 먹었다. 예나 지금이나 잔치 분위기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복을 나눈다”고 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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