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봉(작가)

삽화 이청초

낯선 봄

낯선 봄이다. 어느 때부턴가 프리지아 한 다발을 사는 걸로 봄을 맞았었다. 화병에 꽂아 창가에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봄이었는데 올봄에는 뭣에 씌었는지 그 꽃 때를 놓쳐버려 망연히 창가의 텅 빈 화병자리만 바라보고 있다. 뜰의 산수유는 올봄에도 어김없이 뭉글뭉글 꽃을 피웠건만 그 꽃의 노랑도 가슴으로 확 안겨오지 않고 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마저 푸석푸석 공기 속으로 풀려져버리는 것 같다. 봄이 와도 갈 데도 없고 딱히 가고 싶은 데도 없어져버려 싱겁게 집 앞 냇둑만 오르락내리락해 본다. 

냇가 물오른 버드나무 아래 봄이라고 찾아온 청둥오리들 자맥질도 무료하고 푸르러오는 산 그림자 속으로 날아가는 왜가리들 날갯짓도 기운차지 않다. 냇가 옆 묘포 밭은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일이 시작되는 곳이다. 스물이나 서른 분쯤 되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답답한 마스크를 쓴 채로 고개를 숙이고 호미질만 하고 있다. 여느 해 같았으면 이따금 밭이랑에 모여 앉아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는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발랄하게 봄 공기를 흔들어놓곤 했었는데.

 

꽃만 먼저 보내놓고

전라도 구례 사는 친구가 산수유 흐드러진 사진들을 보내왔다. 달려가서 그 노란 꽃그늘에 앉아 해가 노랗게 넘어갈 때까지 주거니 받거니 낮술이라도 기울여야 하는 건데... 봄날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은가? 지금쯤 매화도 만개했을 것이고 우리 산천에 봄꽃들이 줄지어 피어날 것이다. 

산비탈에 진달래 핀 것도 봐야 하고 이웃동네 봉화 띠띠미에 산수유 구경도 나서야 하는데... 꽃만 먼저 보내고 봄은 아직 오지 않으려나보다. 해마다 이맘 때 쯤에는 남도의 섬들로 떠나곤 했었지만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뛸 수도 움칠 수도 없는 봄, 하다못해 어느 찬란했던 봄날의 기억 속으로나 돌아가 봐야겠다.

 

어떤 봄날

어느 봄날, 길 위에 있었다. 아랫녘 서쪽바다의 작은 선착장에서 연락선(連絡船)에 올랐다. 봄이 일찍 찾아오는 칠산 앞바다의 바람결은 뺨을 기분 좋게 간질여주었다. 머리 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과 벗해 한 시간을 조금 못 미쳐 달려 섬에 닿았다. 선착장 인근의 민박집에 배낭을 던져놓고 바다에 나와 앉았다. 저물어가는 바다 위로 세 번의 고동소리를 울리며 내가 타고 왔던 마지막 배가 떠나고 있었다. 막배가 떠나고 나서야 섬은 비로소 섬이 된다. 

세상과 세상,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들은 지워지고 마음조차 갈 데도 올 데도 없어지게 되는 그때에야 오롯이 섬이 되는 것이다. 붉게 물들었던 바다에 저녁 이내가 수런수런 깔리고 괭이갈매기 소리로 까마득 저물어갈 때까지 어둡게 출렁이는 봄 바다를 보고 있었다. 이튿날 느지막이 길을 나섰다. 그 섬을 일주하는 길 오른쪽으로는 연한 초록의 봄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고 왼쪽 산그늘에는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 있고 그 사이로 이따금 노란 복수초가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바람꽃이 하늘하늘 하얀 꽃대를 흔들기도 했다. 

꽃 냄새 바다 냄새에 취해 건들거리며 걷고 있는데 갯바위에서 물질하는 아낙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갯바위로 내려가 배낭에 챙겨온 소주를 꺼내 놓으며 그 동네 말로 제법 유창하게 “아짐, 거시기 뭐 안주꺼리 쫌 있을래나?” 했더니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는 구럭에서 아이 손바닥만 한 전복들을 푸짐하게 내놓으면서 오랜 물질로 얼굴은 까무잡잡 그을었지만 눈빛만은 맑던 한 잠녀(潛女)가 꿈결처럼 말하는 게 아닌가! “진달래꽃 냄시 맡으러 요눔들이 갯바우로 겁나게 올라 오지라잉.” 그 아찔한 봄날의 정경에 나도 바다도 출렁였었다.

 

목련꽃 필 때까지

집을 나서다가도 ‘아차’하고 돌아와 마스크를 챙겨 나가는 황망한 일들이 잦다. 이렇게 머스크를 꼭 챙겨야 하는 것은 나의 안전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내가 위협적으로 보일까봐서다. 우리를 옭매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오히려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는 기회인 것 같기도 하다. 까짓것 바이러스란 놈이 아무리 그악스러워도 다른 나라들처럼 사재기도 없고,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외롭고 힘든 싸움으로 뛰어드는 의료인들도 있고, 우리 사회는 잘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 모두 마음을 모으다보면 곧 봄이 올 것이다. 요즘 제일 고초를 겪고 있는 대구 친구의 하소연을 듣다가 내가 말했다. “인생은 피고 지는 것 아니던가? 목련꽃 피면 코로나 지겠지.” 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부터는 뜰의 목련꽃망울만 보고 살아야겠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