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오랜만에 티브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메르스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낭만닥터 김사부2’라는 드라마다. 주인공 김사부는 거대재단에서 설립한 병원의 시골 분원인 ‘돌담병원’의 외과과장이다.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의사지만 유난히 외상 환자가 많은 시골병원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의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다.

그의 돌담병원 생활은 순탄하지 않다. 재단이사장은 수입이 되지 않는 돌담병원을 폐원하고 VIP 손님을 받아 힐링 중심으로 운영하는 영리병원을 세울 계획이다. 이사장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돌담병원을 없앨 궁리만 한다. 김사부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사장은 본원의 의사들 가운데 문제가 있는 의사들만 돌담병원으로 파견한다. 일단 파견된 의사들은 김사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돌담병원의 보람 있는 일들을 겪으며 김사부에 동화되어간다.

영리병원 쪽으로 가려는 의사집단과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충실하려는 의사들 간의 갈등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주제이고 이면에 깔린 주제는 낭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 전에 읽은 선우휘의 단편소설에도 의사 이야기가 있다. 가방 하나 들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도는 의사 이야기다. 그는 허름한 차림의 나그네로 유랑하다가 위급한 환자를 만나면 치료해 준다. 진료비는 받지 않고 그냥 떠난다.

치료를 받고 나은 사람이 치료비를 주어도 받지 않고 나중에 은혜를 갚겠다며 이름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그냥 떠난다. 그의 친구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의사는 치료비를 받으면 고마워하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대답한다. 만약 김사부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미소 띤 얼굴로 ‘개멋 부린다’고 하고 그게 ‘낭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드라마는 김사부의 바람대로 돌담병원이 재단의 지원을 받는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어 보다 좋은 진료여건이 마련되는 것으로 끝난다. 의료인 본연의 일에 충실했을 때 얻어지는 보람으로 짜여 진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드라마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마지막 회에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는 낭만의 정의는 진정한 낭만이 무엇인가를 암시해 준다.

“낭만보존의 법칙,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 알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그러나 누군가는 그 아름다운 가치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 매순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러한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은 끝난다고 김사부는 말했다.”

사람들은 ‘정의’라든가 ‘진리’라든가 ‘목숨보다 귀한 가치’라든가 그런 것이 존재하는 걸 안다. 그것이 아름다운 가치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그런 가치를 애써 부정하려 한다. 권력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의를 위해 세속적 가치를 버리는 이를 바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그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세속적 가치를 버리는 이들을 역사 속에서 만난다.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을 때 모든 걸 버리고 의병이 된 사람,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북방의 겨울을 견디는 독립군이 된 사람, 엄혹한 독재권력 앞에 맨몸으로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려고 자기를 희생하고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이가 있었다. 이들에 의해 낭만은 보존된다. 세상이 말세라고 탄식해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온전히 망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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