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산업사회가 되기 전 우리민족은 농사를 지으면 반만 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설은 농경문화의 산물이며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한해를 마무리 짓고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이 설이다.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어른들께 세배를 함으로써 한해를 경건하게 출발하는 날이다. 설부터 보름 동안 어른들은 윷놀이를 하고 부녀자들은 널뛰기를 하고 아이들은 팽이치기, 재기차기, 연날리기를 하면서 세시풍속이 이어진다. 이 기간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이만 하며 지낸다. 보름이 되어야 연줄을 끊어 액운과 함께 날려 보내고 비로소 농사일을 시작한다. 우리의 정초 풍경은 서양의 축제(Festival) 기간과 같다.

설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우리민족의 대표적 세시풍속이다. 민족의 전통문화는 그 민족의 세시풍속을 통해 형성된다. 어린이들에게 설은 마냥 즐겁기만 했지만 그 즐거움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리민족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배우게 된다. 가령 차례를 통해 조상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세배를 통해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를 익히게 된다. 널뛰기를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익히고 윷놀이를 통해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연을 날리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키우기도 한다.

우리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고 자본주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지난날의 설 풍속도 차츰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일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노는 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데 있어서 놀이는 일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것을 간과하기 일쑤다.

세시풍속은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훌륭한 교육의 기능을 담당했다. 우리는 세시풍속을 통해서 우리민족만의 정체성을 하나하나 쌓아 왔다. 흔히 교육이라고 하면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성적을 높이는 일로 여기기 쉽다. 매우 그릇된 생각이다. 교육학원론에는 ‘교육은 개체와 환경의 교호작용’이라고 되어 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에 따라 그의 능력과 인격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학교교육은 교육의 여러 환경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해야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자란 환경은 경쟁하는 환경이지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아무리 좋은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좋은 교육이었다고만 할 수 없다.

아직도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동화를 쓴 권정생 선생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명문학교 출신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누구보다 힘겨운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 어려운 환경이 그가 훌륭한 성품을 형성하고 좋은 동화를 쓰게 한 교육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그를 자라게 한 환경이었다. 그 다음이 책이었다. 성적을 올리는 공부는 마음만 먹으면 책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도 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다.

설날 아침 차례도 여행지의 콘도에서 지내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온 마을을 돌며 어른들께 세배 드리던 풍속도 보기 어렵다. 널을 뛰고 연을 날리는 풍속도 자꾸만 사라져 간다. 상품을 팔기 위한 특산물 축제는 늘어나지만 설에서 보름까지 먹고 마시고 놀던 우리들의 세시풍속은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민족의 우리민족다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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