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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창수의 잊혀진 영주역사이야기[71]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류창수(전 영주문화원 이사)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20.01.09 10:35
  • 호수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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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은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미륵당마을 윗편 논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보물 제680호로 본존불의 높이가 1.38m, 양쪽 협시(脇侍)가 오른쪽 1.23m, 외쪽 1.22m로, 높이 약 3m 크기의 사각형 바위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남면(南面)에는 삼존불(三尊佛)을, 다른 3면에는 독존상(獨存像)을 각각 양각하였다.

남면을 제외한 다른 3면의 조각은 거의 마멸된 상태이고, 동면의 1상이 머리 부분과 몸체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이며, 서면은 결가(結跏. 책상다리)한 여래상의 윤곽과 대좌의 연꽃잎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며, 북면은 본래 불상이 미완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존불은 모두 눈이 깊이 파여지기는 했으나, 정제된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전면에 호분을 칠했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어 조각의 세부를 알아 볼 수 없음은 유감스럽다.

삼존불에 대한 역사와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자.

<본존불(本尊佛)>

옷은 통견(通肩)이며,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좌상으로 머리는 원각(圓刻), 육계(肉게)는 매우 크다. 얼굴은 비교적 긴 편이고, 백호(白毫. 눈썹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는 없다.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입은 미소를 띠고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손은 마멸이 심하나, 왼손은 여원인(如願印), 오른손은 시무외(施無畏. 두려움을 없애주고 소원을 다 받아줌)의 통인(通印)인 듯하다. 무릎은 매몰되어 좌대를 알 수 없고, 배광(背光)은 두광(頭光. 부처의 머리에서 발하는 빛)만 표시되어 웅건한 불꽃무늬를 보주(寶珠)모양으로 나타내고 있다. 법의는 두 손을 거쳐 무릎을 덮었고, 가슴 앞에는 군의(裙衣. 허리에서 무릎아래를 덮는 긴치마 모양의 옷)의 띠 끈이 보인다. 얼굴모습이 온화하면서 단정하고 위엄을 느끼게 한다. 옷 주름은 분명치 않으나 사실적인 표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협시(右脇侍)>

정면으로 바로 섰으며, 머리에는 삼면화관(三面花冠)을 썼고, 앞면에 무슨 조각이 있는 듯 하나, 알 수는 없다. 얼굴은 길고 세부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마멸되었으나, 보발(寶髮)이 길게 늘어져 어깨를 덮은 것이 보인다. 두 손은 가슴 앞에 합장했고, 두 팔을 거쳐 내린 천의(天衣)가 길게 늘어져 있다. 몸에는 장엄구(莊嚴具)가 거의 없는 듯하다. 목걸이와 팔찌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무릎 이하는 매몰되어 옷 주름이나 대좌를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머리에는 본존과 같은 모양의 두광이 있다.

<좌협시(左脇侍)>

정면으로 바로 선 상으로 다른 두 상보다 얼굴이 풍후한 모습이며, 두광은 같은 형식이다. 머리에는 높은 삼면화관을 썼으나, 앞면이 파손되었다. 두 눈은 역시 깊이 파여졌으며, 코는 떨어져 버렸다. 두 어깨위에는 보발이 길게 늘어져 끈은 꽃잎모양을 이루고 있다. 비교적 두꺼운 천의가 두 어깨에서부터 두 팔을 거쳐 배 앞에서 U자 모양으로 늘어졌고, 왼손은 배꼽 앞에서 무엇인가 잡고 있는 자세이다. 몸에는 아무런 장신구도 없어 매우 소박한 감을 준다. 몸체에 견주어 비교적 큰 머리나 좁은 어깨에서 고졸(古拙. 기교는 없으나 소박한 멋)한 모습을 느끼게 한다.

이상, 삼존불은 조상(造像)형식이나 지체(肢체), 수인(手印)이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상과 비슷하지만, 세부 조각수법이나 형식은 그 보다 예스럽고 특히 두광(頭光)형식이 그렇게 보인다.

조성연대는 7세기 이하로 보인다. 매몰된 부분의 발굴과 군데군데 붙어있는 호분을 제거하면 좀 더 자세한 부분을 알 수 있으리라는, 진홍섭(秦弘燮)박사의 말이다.

<參考文獻. 榮州榮豊鄕土誌>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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