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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자로 다시금 ‘새로운 꿈’ 생각합니다”영주청년학교 나와 대학졸업 앞둔 최준범 씨
  • 김은아 기자
  • 승인 2020.01.15 15:28
  • 호수 748
  • 댓글 0

낮에는 생업에, 밤에는 학생으로
4년여 동안 열심히 달려온 보람

최준범 씨

“두 자녀가 대학생인데 내년에 저도 대학생이 됩니다. 영주청년학교에 들어와 처음 가르침을 받았던 때를 생각하면 신기하고 전기가 오듯 몸에서 짜릿함을 느꼈었어요. 가장 기억나던 과목이라면 수학이에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우면서 피타고라스에 대해 알게 됐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알고 깨닫게 된 것들이 너무 많았죠. 사회와 한국사는 시험점수도 높게 받았어요. 모두 지도해준 선생님들 덕분이에요.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서도 열심히 할 것입니다”

2017년 12월 영주청년학교 졸업식장에서 최준범(63. 범 인테리어공사 대표)씨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남긴 말이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지방행정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예천군에 있는 경북도립대학교 지방행정과를 들어간다던 그는 이제 대학졸업식만을 앞두고 있다.

지난 4일, 그를 만나 학업에 대한 갈증과 고민 끝에 시작한 공부, 4년여 열정으로 살아온 시간들, 앞으로 계획을 들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봉화군 재산면이 고향인 그는 3남2녀 중 둘째로 집과 들보다는 산의 초록이 더 우겨졌던 산골에 살았다. 일월산이 보이던 면내에 있는 동면초등학교를 30분 넘게 걸어 다녔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개울의 돌다리가 떠내려가 비를 맞으며 산길을 돌아 가야했다.

어렵게 살던 시절에 산길을 다니며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집안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 이른 나이에 일을 배우려 타지로 떠났다. 전문적인 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들어간 곳은 목공소. 이것저것 열심히 배우고 익혔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일을 배우려 철공소로 옮겼지만 막상 하다 보니 자신이 잘하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은 목공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이후 목공에만 전념하기를 수년째 성실하게 일하니 돈도 조금씩 쌓여갔다. 그러나 왠지 가슴 속에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있었다. 배움이었다.

공부가 하고 싶어

그렇게 타지에서 목공으로 전문가의 삶을 이어가던 그는 1988년 영주에 정착했다. 목공으로 30여년을 해오다 별도의 사업장에 인테리어 업체도 세웠다. 주로 현장을 다니던 그에게 어느 날 영주청년학교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열심히 살아온 그에게 배움은 크게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미안함이 들 때가 생겼다고 한다.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이력을 적어야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 학기 초에 아버지의 학력을 적어야 할 때는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보다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먼저였던 그는 배움을 잠시 뒤로 밀어둘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삶의 여유도 생겼고 자녀들도 잘 자라고 있을 때 지나가면서 청년학교를 보게 됐어요.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될까, 늦은 건 아닐까, 어렵진 않을까하는 여러 마음이 오갔죠. 3년을 그렇게 청년학교만 바라보며 지나다녔어요”

학생으로 배움의 시작

배움의 갈증이 깊었던 만큼 자녀들에게도 아버지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60세가 되기 전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는 청년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2016년 3월 17일 입학한 그는 낮에 일해 몸은 고단했지만 늦은 공부에 정말 열심히 배웠다고 한다. 한 달 앞둔 4월 검정고시는 어려워 그해 8월 시험을 목표로 이해가 어려우면 물어가며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오후 5시에 일을 마치고 오면 무척 졸린데 그래도 졸면서 공부했어요. 나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젊은 청년, 어르신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힘을 냈지요. 1박2일로 함께 수학여행을 간 것도 기억이 남아요”

그렇게 중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자녀들에게 공부한다는 것을 알렸다. 아버지를 적극 응원하는 자녀들 덕분에 힘을 얻어 다음해 4월에는 고등과정을 모두 마쳤다.

“하나라도 더 알게 해주려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배울 수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꼼꼼하게 가르쳐주고 포기하지 않도록 적극적이셨지요. 수학이 너무 어려웠는데 수학담당인 박찬하 선생님은 끝까지 주어진 문제를 풀고 가라고 하셨죠. 그래서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검정고시도 통과할 수 있었지요. 내가 그런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가르친 선생님들에게 공부 외에도 몰랐던 상식이나 살아가는 삶의 방식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 좋은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망설이며 전화를 걸었던 자신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얼른 찾아오라고 말해준 선생님이 있었기에 고교졸업장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8 경북도립대학교 해외문화 탐방 연수
대만 연수에서 가이드와 함께
대만 연수중에 대학 동기들과
지난해 봄에 찍은 대학 졸업 기념사진

대학생활과 졸업

고등과정을 마친 그는 대학에도 도전했다. 잠깐 쉬면 어떨까하는 갈등도 잠시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은 것은 선생님들이 더 넒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말과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공부해 대학교에 들어간 동생이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다. 배울 수 있을 때 배우자는 마음에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분야로 경북도립대학교 지방행정과 야간에 입학했다.

“나를 포함해 우리 집에는 3명이 대학교를 다니게 됐어요. 대학에 합격하니 아이들이 많이 축하해줬지요. 이제는 아이들에게 당당한 아버지로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에 입학한 그는 리포트 작성, 학교생활 등 낯선 것들이 많았지만 자녀들과 학교동기들의 도움으로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러나 전공과목 중 이해가 쉬웠던 것도 있지만 법제가 특히 어려웠었다고. 동기들과 MT도 가고 1학년 말에는 학과별 추천으로 대만 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자신도 신청해 함께 참여했다.

사회복지사 2급자격증도 취득한 그는 졸업과 자격증에 필요한 봉사활동 32시간, 실습 120시간을 채워가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단다. 평일에는 공부하고 비수기에 맞춰 실습을 다니며 2년 동안 쉴 틈 없이 시간을 쪼개며 살았다고 했다. 모임도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아갔지만 그에게는 정말 보람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난해에는 과의 학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사회복지를 배우면서 여건이 된다면 나누며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마침 김우출 선생님이 이제 대졸자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으니 못 배운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하셔서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새로움 꿈, 다시 시작

88세인 어머니는 그가 청년학교에서 받은 중, 고등졸업장을 가져다 드리면 어느 누구보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미안하고 대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셨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그는 올해 경북전문대학교 사회복지과 3학년으로 입학을 앞두고 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고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여하고 싶어 사회복지사 1급 취득을 위해 입학하게 됐어요. 이젠 사회일꾼으로, 대학생으로 생활하는 자녀들은 나의 공부에 격려를 보내고 존경의 의미를 전해요. 정말 뿌듯했어요.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덜 해졌죠”

그는 모임이나 단체 활동에 가면 영주청년학교를 홍보한다. 그리고 지금도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청년학교를 찾아가 부족한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앞으로 그는 나이가 더 들어 사업에서 손을 놓게 되면 어르신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보조강사나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것이 바람이다.

김은아 기자  haed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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