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수필가·시조시인·본지논설위원)

‘不知肉味’ 고기 맛을 모른다는 이 말은 원래 고기 맛을 모를 정도로 음악에 심취했다는 공자의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가난하여 고기를 한동안 먹어보지를 못했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不知肉味’할 정도로 어렵게 살다가 마침내 고기를 마음껏 먹을 정도로 돈을 벌었으나 여전히 고기 맛을 모르겠기에 자기를 빗대 역시 고기는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 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 온다.

오늘날은 이 말 가운데 ‘맛을 안다’를 ‘더 먹는다’로 바꿔치기 하면서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더 먹는다’ 로 와전되고 있다. 맛을 아니까 더 찾는 건 당연할 것이다. 두 문장 간에는 뜻의 차이가 별로 없으나 후자문장에 말을 변형대입하면서 재미있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이를테면 명품도 쓰는 놈이 더 산다. 옷도 많은 놈이 더 옷, 옷 한다. 날씬한 사람이 다이어트 한다. 예쁜 사람이 성형한다. 돈도 버는 놈이 더 번다. 등등 많은 말이 생겨나면서 이미 갖춘 사람이 더 한다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돈도 버는 놈이 더 번다’에서 일단 멈추어 보자. 여기서 ‘더 번다’ 를 ‘더 벌려고 애쓴다’로 확장해서 생각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돈의 맛을 아는 사람이 돈을 더 모으려고 애 쓴다’ 는 의미가 된다. 돈의 맛은 곧 돈의 위력이다.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돈은 있을수록 편리하고 편하고 감사해서 돈을 향한 인간들의 마음이 끝이 없다보니 돈을 향한 행진이 천태만상이다.

돈을 모을 목적으로 급여가 있는 곳에 몸과 청춘을 바치고 급여를 아껴 저축액을 높이거나 적당한 곳에 투자를 해서 급여외의 수익을 얻는 모든 사람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무랄 일도 아니다. 그저 아름다운 경제활동이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남의 밥그릇을 넘어다보는 것 같은 수익활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것이 집안끼리의 싸움일 때는 정말 보기 싫은 장면이 된다.

부모를 영안실에 둔 상가에서 부모가 남긴 유산 때문에 싸움이 벌어져 문상객을 소홀히 하는 초상집이 있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생전에 서로 모시려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남긴 유산에 대해서는 서로 권리를 앞세우는 다툼이 벌어지는 집안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문중인지 모르지만 딸들이 힘을 합해 문중의 재산을 분할해 달라고 소송을 한 경우도 있다. 이 사건은 여권신장(女權伸張)에 힘을 입었는지 여권신장(女權伸張)에 불을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귀추가 주목되는 일이었다. 아마 이겼다고 들은 것 같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현재와 이후의 일이 아니라 이미 사회 통념적으로 결정된 과거의 일을 뒤엎기 위해 법을 동원하는 이들은 똑똑한 딸들이라기보다 돈을 향한 용감한 여성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재벌가 아들들의 재산 다툼은 세상의 구경거리다. 재벌들은 집안의 싸움을 숨기지도 않고 신문에 텔레비전에 무방비로 떠들어도 이기기만 할 욕심으로 해명도 반성도 없다. 그 대상 액이 천문학적인 숫자라서 서민들은 감각도 없지만 보고 있자면 이미 가진 것도 혜량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체 뭐하는 짓거리인가 싶다. 고기도 먹어 본 자가 더 먹는다더니 ‘돈도 있는 자가 더 밝히네. 하는 새로운 말이 또 생겨난다.

최근에는 재벌가의 남매들이 막 싸움을 시작했다. 회사 경영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과 다르다며 동생에게 돈을 향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집안에서 가리지 않고 또 법의 힘을 서로 쓰겠다는 것이다. 왜들 이럴까? 해도 해도 너무들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넘치게 가진 자들이 상대의 것을 빼앗으려고 피를 나눈 사람들끼리 새해 벽두부터 싸우는 꼴은 어느 쪽이 이기든 정말 보고 싶지 않다.

며칠 전에 친구 사이인 두 여자가 나누는 말을 들었다.

“나, 오늘 화장품 샀어.”

“또 시장바닥에서 파는 거 샀지. 만 원짜리? 얼마나 산다고 그런 걸 사. 죽으면 아무것도 못 가져가. 나는 이번에 큰 맘 먹고 달팽이 크림 하나 사 봤다.”

“얼만데?”

“이만 원.”

서민들은 이러고 산다. 이래도 그들은 불평이 없다.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전(錢)의 전쟁을 치루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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