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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은면 강동리 왕유동에 ‘도마바위(예수의 제자)’가 있다?[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12.27 06:33
  • 호수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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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역사교사(기독신자)의 현몽으로 도마상 발견
석상에 새겨진 도마, 손모양, 명문 등 기독교적 형태
성지순례 발길 이어져 또 하나 영주의 관광명소 기대

왕유동 도마상
세계의 기독석학들 도마상 앞에 모였다
손모양(手勢)

평은면 강동리 왕류마을(王留洞)

왕류동은 영주댐 오토캠핑장 동쪽 1km 지점(옛 송리원)에서 안동방향 2km 지점에 있는 오지마을이다. 왕유동에는 ‘분처(分處)바위’ 또는 ‘도마바위’라 부르는 흔하지 않는 바위가 있고, 또 공민왕이 머물다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등 유서 깊은 마을이다.

왕유(王留)란 고려 말(1361년) 홍건적 침입 때 공민왕이 순흥으로 몽진(임금의 피난) 왔을 때 순흥의 겨울이 너무 추워 안동으로 옮겨 가는 길에 이곳에서 머물다 갔다하여 임금 왕(王)자에서 ‘왕’자를 따고 머무를 유(留)자에서 ‘머’자를 따 ‘왕머리(王머里)’라고 부르다가 한자를 붙이니 왕유동(王留洞)이 됐다. 공민왕이 이곳에 머물다 갔다는 고려 말보다 1천여 년이나 앞서 조성됐다는 ‘분처(分處)바위’는 부처바위가 아니라 기독교 관련 ‘도마상’이라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우측부터 도(Tau), 마(Mem), 기도하는 손, 사람

분처(分處)바위의 발견

이 석상을 발견한 유우식(兪禹植)이란 사람은 1987년 당시 영등포여고에 재직 중인 현직 교사이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집사였다. 그해 여름 성도들과 철야기도회를 하고 있을 때 깜박 잠이 들었다.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 “우식아, 영풍군 평은면 왕유리에 가서 석상(도마상)을 찾아 역사를 바로 세우라”는 음성이 들렸다. 이튿날 아들과 배낭을 챙겨 영주행 열차를 탔다. 영주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평은면소재지까지 왔다. 물어물어 왕유리에 도착하여 마을 어르신께 물었더니 ‘언덕배기 산 밑에 두상이 없는 부처바위가 있다’고 했다. 

그 곳으로 달려가 보니 우거진 잡목 속에 우뚝한 바위가 보였다. 풀숲을 헤치고 가까이 가보니 집채만 한 크기에 높이는 5m가량 되어 보였고, 이끼와 솔잎이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 집사는 바위 앞에 무릎 끓고 기도하기를 ‘주님, 이곳까지 인도해 주셔서 왔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저를 감동해 깨달아 알게 해 주소서…’ 기도 중에 “그 바위의 이끼를 벗겨 보라”고 하셨다. 

마을 분들의 도움으로 사다리를 놓고 이끼를 걷어냈다. 이게 웬일인가? 수백 아니 수천 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가 나타나지 않는가? 그날 이후 여러 차례 답사와 탁본 분석을 통해 ‘도마상’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게 됐다.

사도 ‘도마’는 누구인가

도마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다. 주후 2년에 갈릴리 티베리아에서 출생해 목수와 석수 일을 배우며 성장했다.

도마가 한반도까지 직접 선교여행을 왔었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왕유리 ‘도마상’이다.

기독교 역사연구에 의하면 “도마(석수·목수)는 예수의 뜻을 좇아 이스라엘을 떠나 이역만리 떨어진 가야국(한국41-49)에 왔으며, 실크로드를 따라 낙동강 상류(영주)까지 와서 복음과 신기술을 전했다”고 추정하는 기독학자도 있으나 확증은 없다.

네모골 히브리어 타우·멤, 즉 ‘도마
지전행(地全行) 명문
가슴 부분에 새겨진 십자(+)상

 

샌달 신은 발가락

석상을 ‘도마상’으로 보는 근거

바위 앞에 서서 바위를 쳐다보면 손 모양과 네모꼴 히브리어 글자 4자만 선명하게 보일뿐 다른 부분은 마모가 심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영주에 있는 석상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석상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이 탁본을 통해 판독·연구한 내용을 보면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 석상 왼쪽 어깨 옆 네모꼴로 새겨진 글자 중 우측 1,2번째 글자가 히브리어 ‘타우’와 ‘멤’(Thomas)’ 즉 ‘도마’라는 글자가 가로 30cm, 세로 30cm 정방형으로 새겨져 있다.

손 부분은 흔히 볼 수 있는 불상의 수인과 다르다. 왼손가락 끝은 빗장뼈에 댄 채 손등을 보이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돌림하고 있다. 이는 1908년 중국 돈황에서 발견된 그리스도상(景敎畵像)의 형상과 비슷해 기독교적인 형태라는 학설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암각 하단 부분에 새겨진 ‘야소화왕인도자(耶蘇花王引導者)’라는 글자의 ‘야소화왕’은 ‘예수’로, ‘인도자’는 ‘전도자’로 풀이하고 있다.(실제 잘 보이지 않음)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는 지전행(地全行)이란 글자는 한나라 시대(BC202-AD220)의 예서체 한자로 ‘땅 끝까지 다닌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예수님의 명에 따라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복음을 전한 사도 ‘도마’를 나타내는 호(號)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또 아래쪽 발 부분을 보면 샌들을 신은 발 모양과 10개의 발가락이 생생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가슴 중앙부위에 올리브 십자가 모양이 있다고 하나 육안으로는 분별하기 어렵다.

도마상 주변 경관

석상은 언제 누가 조성했을까?

기독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400년경) ‘전행(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이름)’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설, 2)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영주와 순흥, 안동 등 소백산 내부 지역을 60여 년간 통치했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상황론적으론 그럴 법하다는 설, 3) 순흥면 읍내리 고분 서벽 묵서명문(墨書銘文)에 고구려인 ‘전행(全行)’이란 이름의 석장(石匠)이 등장하는 점을 들어 당대의 명장인 ‘전행’이 분처상도 제작하였을 것이라는 설, 4) 당나라(618-907) 기독교가 신라로 들어올 때 ‘도마상이 새겨졌을 것’이라는 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

이정수(기독사학자) 목사가 발표한 논문 중에서 “분처상을 기독교와 연관 짓게 되는 근거는 조형기법에서 찾을 수 있다”며 “왼손가락 손등을 보이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돌림하고 있어 불상(佛像)의 수인(手印)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도마박물관 조국현(박사) 관장은 저서에서 “지난 30년 동안 5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왕유동(왕머리)의 도마상(分處바위:예수바위)에 대해 검증했다”며 “도마상이 맞다”고 썼다. 

석상을 발견한 유우식 선생은 논문에서 “‘분처(分處)바위’ 유적은 한국사상의 원류를 이룬 고대기독교 유적이며, 고구려 호태왕 영락 19년(서기409년,己酉)에 명전행(名全行)이 작성한 사도 도마의 전도기념 유적이며, 또한 고구려 유적이므로 국보로 지정하여 보다 철저히 관리되도록 관계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규(대신대) 교수는 답사기에서 “이 깊은 산 속에 히브리어 자음이 너무나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사실 한 가지만 가지고 생각해도 동천동지(動天動地)할 사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적었다.

기독교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1)석상의 수세(手勢), 상(像)의 구도나 복장의 화려함, 샌들을 신은 열개의 발가락 등 조형기법이 기독교 특유의 것이다. 2) 옷의 문양(文樣)이 당시의 경교 성직자들이 입었던 제의(祭衣)인 가운(gown)의 느낌이 매우 강하다. 3)석상에 새겨진 ‘도마’, ‘야소화왕인도자’, ‘명전행’ 등은 기독교와 관련이 깊은 명문이다.

지난 5월 안동에서 열린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 학술포럼에 초대되어 왔다가 영주 내매교회 윤재현 목사의 안내로 도마상을 찾은 윌리엄 스탠리(Dr William Stanley) 영국 에딘버러대 교수는 “인도에도 이와 비슷한 그림이 있다”며 “분처상에서 양손을 반대 방향으로 그린 것은 동방기독교(경교)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마상,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74호

왕유마을 사람들

왕유리는 횡성조씨 300년 세거지이다. 지난 7일 왕유경로당에서 어르신들로부터 분처바위 내력을 들었다. 조명진(72) 노인회장은 “도마상은 영주 송리원에서 안동 당곡골(堂谷)로 넘어가는 옛길 옆에 있다. 수십 년 전 서울 사람이 분처상을 처음 발견했을 때 잡목을 쳐내고 이끼를 벗기는 광경을 목격했다”며 “어릴 적에는 ‘부처상’이라고만 들었는데 ‘분처상?’ ‘도마상?’이라니 헷갈린다. 연중 도마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수행(82) 할머니는 “교수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뭔가 설명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관광차가 여러 대 올 때는 노인회관 화장실이 난리난다”면서 “분처바위 머리가 ‘제비원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새댁 때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심혜진(50) 부녀회장은 “왕유로 시집와서 도마상 이야기를 들었다”며 “순례자들이 많이 오시는데 표지판도 없고 화장실도 없어서, 마을에서도 불편하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조진탁 이장은 “관광객이나 순례자들이 물어물어 찾아오는데 제대로 된 안내판이 설치됐으면 좋겠고, 또 화장실·주차시설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될 것 같다”며 “이 ‘분처상’이 기독문화재로 인정받아 또 하나 영주의 관광명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처:예수의 제자라는 뜻]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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