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시조시인·본지 논설위원)

자고 일어날 때 정신이 맑아지기 위해 사람들은 기지개를 켠다.

맨손체조를 하거나 심호흡을 하고 동네주변을 산책하거나 가까운 산을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이 맑아지기는커녕 아침부터 보고 듣는 이야기가 온통 뒤죽박죽이어서 하루 종일 어리둥절한 채로 지내는 나날이 이어진다.

그토록 즐겨보던 텔레비전을 볼 때도 마찬가지여서 채널도 많아지고, 볼거리 들을 거리도 숱하지만 뭐가 옳고 그른지를 가릴 수가 없으니 가슴만 답답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민주 사회에서 제몫의 권리와 의무를 지켜 가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편 가르기에 골몰하는 형국이다.

그들의 주장은 한결 같다.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고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법치국가라는데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보는 듯하다.

시골 사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나가서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태극기를 들었다고 해서, 국민이 분열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고, 정권이 오히려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데서 분열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맞서기도 한다.

“이건 한 명을 죽여서 정권을 살리는 나름의 방법이 될 수는 있다. 정권이 (대선개입 논란·복지공약 후퇴 등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앞으로 한 발도 내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눈앞에 작은 디딤돌이라도 있으면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돌멩이 하나를 발견했다. 이 상황을 무마시키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돌멩이의 발견이 정권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는 것”

이라고 분석하면서 이런 일련의 사태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제정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역 국회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혹은 통합진보당 사태, 종교의 이름으로 시국관련 집회를 여는 행위의 주체들이 과연 모두 ‘쉬운 상대’인가.

여기서 ‘쉬운 상대’라고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활동, 통념과 다른 개성 강한 주장을 하는 사람, 일반인 정서와는 다른 분의 문제점을 표적으로 삼아 본보기로 집중 공격해서 고립시키기 쉬운 이들을 싸잡아 말하는 것이라 해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제정신이 아닌 이들은 말썽의 주체가 툭툭 내던지는 말과 행동이 하나같이 동의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모든 시민이 그렇듯 그들도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있으니 누구의 말이나 생각이 나하고, 또는 다른 사람하고 다를 수 있으니 이 다름, 차이에 대한 관용이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하면서 절대로 물리력으로 막으면 안 된다고 부르짖는다. 나아가서 진보든 보수든 중도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언젠가 나도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현 정권의 위험한 조치를 비판해야 한다고 선동한다. 선동에 들러리 서는 이는 모두 꼭두각시다. 자기 생각으로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고 해서 두고 보자는 말보다 무책임한 게 어디 있는가.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웬만한 불편과 부당을 참아내는 게 정상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자기 할 일을 찾아낸 것을 드러내고 주위의 함묵적인 동의를 구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민의의 대변자를 선거하고, 선별해서 재신임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민의의 대변자라는 이들이 특히 의원, 지도자, 언론인, 방송인들이 그저 자기 뜻만 고집하고 자기네 이익만 좇고 있으니 어찌 왼고개를 치지 않으랴. 눈앞에 닥친 현실적 고통과 고난을 잊기 위한 모임과 술자리에서 그저 씹힐 뿐이다.

지금 제정신으로 살고 있다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일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본분이 아닐까 한다.

옛 어른들은 ‘수신제가후 치국평천하’를 실천하셨다. 우선 자기 몸가짐부터 바르게 하고 가정을 꾸린 뒤에야 나아가 나라 살림을 걱정하면서 민심까지 일구었던 것이다. 지금 책임져야 할 생계를 걱정하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일자리와 빈부격자 해소와 복지 증진이 최고 화두이고, 자라나는 세대들은 안심하고 학업에 정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최고 화두다. 제정신이 아닌 이들은 사회에서 격리조치 하는 것이 일반적인 치유방안이듯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제도와 법규를 통해서 아니 인간으로서의 양식과 윤리 도덕의 바탕 위에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를 걱정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제정신인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이라고 해서 핏대 세울 일도 아니고, 나와 다른 행동을 한다고 해서 두 팔 걷어붙일 일도 아니다. 현재의 제도와 법규에서 벗어났다면 일단 제재를 받아야 한다. 비판도 받아야 한다.

그게 순리에 어긋나고 비상식적이라면 입법 활동을 통해서 수정하고 보완해야 마땅하다. 언론도 제정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알려야 한다.

한 목소리만 전달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 목소리를 함께 전해야 한다. 자기 색깔만 내세워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태양빛 모두는 아니다. 빨주노초파남보로 일컬어지는 무지개 빛깔도 단순한 색깔분류일 뿐이지 않은가.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20대국회의 예산안처리가 법정시한을 넘길지도 모른다. 심각한 직무유기인데도 서로를 향해 손가락 하고 있으니 제정신이냐고 묻게 된다. 싸우더라도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닌가. 일상이 싸움은 아니다.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겠지만, 보폭만큼은 자기 능력에 맞추어야 한다.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주위를 꼬드겨 내 편을 만든다거나 무리를 짓는 일에 힘쓴다면 자기 업무만 많아지고 힘겨워질 뿐이다. 힘에 겨우니 하소연만 많아지고 길어지고 일탈의 유혹마저 깃들어 사회가 더욱 어지러워지는 게 아닌지 살필 일이다. 이게 제정신으로 자기를 찾아가는 일이다. 수신이 뭐 별 것인가. 주변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지 않게 제 몸가짐 바로 하고,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생각을 맑게 하는 것부터 시작할 일이다. 우선 내 집 아이들 앞에서의 말과 행동부터 바르게 해야 한다.

그 날에 자기 할 일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면서 시비를 가리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면 된다. 어제의 언행이 오늘의 일상을 연결하며 내일의 비판거리를 제공하는 실마리임을 기억하면 된다. 병원에서 과학적으로 장담하는 생명포기조차 개인의 희망 섞인 노력으로 새 생명을 이어가는 게 현실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순리대로 굴러간다.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세상살이에서 반드시 옳고 그른 것은 없다지 않던가. 모든 숨탄것의 일생은 ‘생로병사’의 선순환과정의 반복일 뿐임을 자각한다면 돌멩이 한 개, 풀 한 포기의 삶이래도 무심히 지나치지는 말 일이다. 한 해를 마무리 지어야 할 11월이다. 그런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질 삶이 아닐진대 숫자와도 같이 오래 이어질 세상인데....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것은 이도저도 아닌 제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일깨움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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