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봉(작가)

삽화 이청초

주말에 가을비가 내렸다. 찬비다. 봄비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의 숨결을 틔우고 말라있던 대지의 가슴을 적시며 보슬보슬 내리고 소곤소곤 내리지만 가을비는 추적추적 을씨년스럽게 내린다. 우수(憂愁)의 그물처럼 내려와 텅 빈 들판을 덮는다. 가을비는 식물의 생장(生長)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찬바람을 몰고 와 떨어진 잎들을 날리며 우리를 겨울의 예감 속으로 데려갈 뿐이다. 옷깃을 여미고 장롱 깊이 갈무리해둔 두툼한 겨울옷들을 꺼내고 어서 빨리 월동준비를 하라고 다그친다. 아직 지상에 남은 푸른 목숨들을 차갑게 적신다. 그렇게 가야 할 곳을 아는 목숨들은 떠나고 온 곳도 갈 곳도 알지 못하는 우리만 남아 젖은 들판을 쓸쓸히 바라보게 한다.

‘Some feel the rain, others only get wet’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젖을 뿐이지만 어떤 이들은 비를 느낀다는 말이다. 우리가 가을비를 무연(憮然)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종환의 시 <가을비>의 첫째 연이다.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가을비는 어제와 오늘을 극명하게 갈라놓는다. 어제는 사랑하는 시간이었고 오늘은 추억하는 시간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시절인연에 따라 저작(詛嚼)과 반추(反芻)를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너를 만나고 난 뒤

나는 또 비가 되어 울었다

우르릉 쾅쾅 뇌성벽력 속에

온 세상 적시는 여름비로 울지 못하고

마른 풀잎 한 웅큼 적시는

가을비로 그렁그렁 울었다

 

백규현의 시 <가을비>의 첫 연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을(乙)이 된다. 을의 신세가 되지 않고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없다. 갑(甲)의 달콤한 속삭임들은 다 거짓말이다. 갑은 당당하지만 을은 언제나 억울해서 운다,

우리에게는 눈물에 대한 고질적 오해가 있다. 남자는 딱 세 번,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만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뜨듯이 눈물이 흘러야 영혼의 무지개가 뜬다. 김현승은 그의 시 <눈물>에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 뿐’이라고 눈물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노래했고. 이상화는 <나의 침실로>에서 눈물을 ‘눈으로 유전(遺傳)하는 진주’라고 그 영롱함을 찬양했다. 누군가 겨우 마른 풀잎 한 웅큼 적실뿐인 가을비로 그렁그렁 울고 있다면 그는 진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 불자

만산홍엽, 만장(輓章)으로 펄럭인다

까만 상복(喪服)의

한 무리 까마귀 떼가 와서 울고

두더지, 다람쥐 땅을 파는데

후두둑 관에 못질하는 가을비 소리

 

오세영의 시 <가을비 소리> 전문(全文)이다. 가을비 소리는 한 시절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 같은 것이다. 찬비가 바람을 몰고 오면 한 시절의 종언(終焉)을 슬퍼하느라 울긋불긋 단풍들도 숙연히 만장으로 펄럭이고 까마귀가 문상을 하고 설치류들은 땅을 판다. 식물들도 동물들도 산속 식구들의 품앗이가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후두둑 마침표처럼 가을비 소리가 관을 닫는다.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엔 쓸쓸히 밤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 앞 외로운 마음 만리를 가네

 

고운(孤雲)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의 한 대목이다. 아무리 첩첩이 문을 닫고 앉아도 창밖의 추적추적 가을비 소리는 아직 못 다한 세상 인연들을 앞세워 우리를 불러낸다.

우리 마음을 불러내 먼 길을 가게 한다. 이 비 내리고 나면 어느덧 우리는 겨울의 들머리에 서게 될 것이다. 겨울은 옷깃을 여미고 문을 닫는 계절이다. 바깥세상은 좁아지지만 우리 안의 세상은 넓어진다. 마음으로 그렇게 만리를 가라고 가을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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